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4.29 31주년, 새우몸집 키우기

2023-04-2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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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은 LA 4.29 폭동 31주년이다. 1992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시미밸리 법원에서 흑인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지자 흑인들은 쌓였던 불만을 폭력과 방화, 약탈로 폭발시켰다. 1년 전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던 흑인 로드니 킹(Rodney Glen King)이 정지 지시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곤봉에 맞아 중상을 입었었다.

4월29일 시작하여 5월3일에야 진정국면으로 들어간 LA 폭동은 사망자 53명, 부상자 4,000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주었고 약 7억5,000만 달러 재산피해를 남겼다. 한인사회는 2,300여 개의 업소가 약탈 및 전소되어 재산 피해액이 4억 달러에 달했다. 당국과 언론은 경찰의 무자비함과 빈부격차, 인종차별보다는 한흑갈등으로 몰아갔다.

이 폭동으로 인해 우리 권익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한인정체성과 자각을 일깨웠다. 그 후 우리는 앤디 김, 영 김, 미셸 박 스틸, 매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 4명과 많은 선출직 공무원을 배출했다.


LA 4.29보다 2년 전, 뉴욕한인사회에서도 한흑 갈등으로 고통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 1월18일 플랫 부시 한인청과상 레드애플에서 하이티 출신 팰리세 여인이 물건을 훔치다 종업원과 시비가 붙었다.

주인 장봉재씨는 3급 폭행 혐의로 입건되고 지역주민들의 항의 데모와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소니 카슨 등을 중심으로 한 흑인과격 운동단체들이 시위대 전면에 포진하였다.

이 지역 식당, 옷가게 등 수십 개의 한인상점도 문을 닫았다. 장봉재 폭행 고소건이 무혐의로 판결나자 불법시위는 7개월째 계속되고 법원의 시위중지 명령에도 중지되지 않았다.

이때 뉴욕한인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한인들은 손님이 뚝 끓겨서 하루 매상이 몇 십달러인 레드애플을 일부러 찾아가 식품을 구매해 주었다. 또 ‘9월18일 뉴욕 시청 앞에 다같이 모입시다’며 구두로, 전화로 모든 한인들은 인종화합대회에 참가할 것을 서로 권했다.

1990년 9월18일 뉴욕 시청 앞에 한인 1만여 명이 모이는 인종화합대회가 열렸고 결국 딘킨스 시장은 법원 명령을 집행하도록 결단을 내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1년 이상 끌었던 브루클린 흑인 시위는 종식 됐다.

미주한인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비극적 사건 LA 4 .29를 아는 2세들이 얼마나 있을까? 30대 한인이 자신이 갓난장이 시절에 엄마 아빠 품에 안겨 뉴욕시청 앞 평화 시위대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것을 알까?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미주한인 역사를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앞으로 또 LA 4.29같은 폭동이나 뉴욕 레드애플 시위사건이 없으란 법이 없다. 인종차별과 폭력, 억압의 악순환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코로나19 발생이후 아시안 폭력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폭력, 미움, 증오, 이러한 혐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편견이다. 아무리 바이든 행정부가 아시안 혐오행위를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도 없어지지 않는다. 언어, 생김새, 피부색,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인종 다민족 뉴욕에 사는 우리들은 한인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타인종과 연대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지금 민주당과 공화당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또 극우주의자에 의한 인종차별주의와 아시안 대상 폭력행위가 남발될 까 염려된다.

얼마 전 한국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새우 몸집을 키워야 한다” 고 미래에서 온 손자 진도준(송준기 분)이 말했다. 이 조언대로 진양철(이성민 분)순양그룹 회장은 외부세력의 견제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 경쟁력을 쌓는데 몰두한다.

새우 몸집을 키워야 한다. 한인들은 정체성을 확립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유권자 등록을 하고 선거 때면 꼭 투표장으로 달려가 우리의 결집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한인사회에 폭력이나 위협이 있을 때 경찰, 카운티, 시 정부가 앞장서 보호해 주고 우리를 대변해 줄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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