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우 목사님의 일주기를 맞아, 사모님으로부터 한 편의 글을 부탁받았다. 목사님께서 생전에 끝내 마치지 못하신 원고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철우 목사님께서 2025년 1월 말, 바하마 여행을 떠나시기 전, 제 아내 (이원영, Claire Kang)와 전화로 통화를 나누신 적이 있다. 그 통화에서 목사님은 윤림 선생에 관한 원고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3월 1일자 한국일보에 게재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장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떠난 바하마 크루즈 여행 중에도 그 초고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 원고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남았다.
그 원고의 주제는 미주 한인 독립운동가 윤림(Lloyd Yoon) 선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2021년, 시카고에 남아 있는 한인 애국자의 외로운 묘지를 찾아 그의 삶을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2023년 장철우 목사님께 보내드렸고, 평생 뉴욕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기록해 오신 목사님은 이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시카고와 뉴욕, 지역을 넘어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흔적을 하나의 역사로 엮고자 하셨던 것이다.
장 목사님의 장례 예배가 2025년 3월 1일, 삼일절에 거행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생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해 온 분이 그날 우리 곁을 떠나셨고, 또한 그날을 위해 마지막 원고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글은 원래 장철우 목사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어야 할 글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의 뜻을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이야기를 처음 기록했던 사람으로서, 미완으로 남은 원고를 대신 정리해 세상에 전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몫이라 생각한다.
장 목사님은 늘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쉽게 잊힌다”고 말씀하셨다. 윤림 선생의 삶 역시 그러하다. 이름 없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조국의 독립을 품고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남기는 일은 장 목사님이 평생 붙들고 계셨던 사명이었다.
이 글이 장철우 목사님의 마지막 원고를 완성하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분이 남기고자 했던 기록의 뜻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 윤림(Lloyd Yoon, 1899-1937) :미주에 남은 한인 애국자의 삶
윤림 선생은 평양 산정현교회의 윤성운 장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윤성운 장로는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인물로, 이후에도 독립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신 신앙인이자 애국자였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윤림 선생이 일찍부터 민족의 현실과 책임을 자각하게 한 중요한 배경이었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윤림 선생은 평양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배포하며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감시와 추적이 거세지자 그는 만주와 상하이를 거쳐 피신하였고, 이후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1920년 시카고에 정착했다.
시카고 한인감리교회의 초창기 교인으로 활동한 그는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번 돈의 일부를 조국과 한인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한국 유학생들을 돕는 데 힘썼으며,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후원을 이어갔다.
그러나 윤림 선생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37년, 마흔을 채우지 못한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한참이 지나서야 한국에 전해졌고, 가족들은 오랫동안 그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인근 알링턴 공동묘지에 자리한 그의 묘에는 “Beloved Friend, Lloyd Yoon, Korean”이라는 짧은 문구만이 새겨져 있다. 조국도, 가족도 아닌 ‘Korean’이라는 한 단어는 그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지를 말없이 증언한다.
1970년, 외손자 (이원국, 하와이 거주)에 의해 그의 묘가 발견되면서 윤림 선생의 삶은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딸 윤현자 여사와 후손들의 꾸준한 참배를 통해, 이름 없이 살다 간 한 청년 애국자의 발자취는 오늘날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개인적인 인연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윤림 선생은 바로 필자 아내 (이원영, Claire Kang, 뉴욕 거주)의 외할아버지이시다. 가족사로만 간직되었던 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역사의 빈자리를 메우는 작업이라 믿는다.
이 원고가 장철우 목사님께서 평생 붙들고 계셨던 ‘기록의 사명’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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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권공학박사/전IBM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