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라는 책이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내용 보다 제목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리며 엄청나게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유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대한민국에서도 이 책 제목은 설득력을 발휘했고 미국이나 일본보다 월등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책은 일단 제목이 좋아야한다. 사람들은 서점에 진열된 수많은 책을 볼 때 제목부터 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어떤 메시지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하고 싶은 말을 제목으로 다 표현했으니 대단한 센스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는 제목만으로 독자의 급소를 건드린 셈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인간은 너무나 작은 것, 정말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 때문에 울고 웃고, 그리고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작은 일에 휘둘리지 않는 대범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원한다. 보다 큰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설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태반이다. 정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서 살아가기를 마지않는다.
그래서 원래 역설적 진리를 담은 책이 많이 팔린다. 통 큰 인간이고 싶은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며 사는 내 자화상이 속상해서 이 책을 샀을 것이다. 적어도 책 제목 앞에서는 정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혹자는 자신의 사소함을 자책하며 분개한다. “나는 왜 그토록 작은 일을 버리지 않고 속상해 한단 말인가.”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저자는 작은 일 따위는 속히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목숨을 걸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시시한 일을 왜 그리 오래 껴안고 슬퍼하는가, 당장 그 불행의 자리를 걷어치우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현란한 위로의 문장을 읽으며 다시 착각한다. “그래, 나는 대범한 사람인데, 왜이리 작은 일에 연연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거지?”
그러나 당신이 할 큰일은 정작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지금 집어치운 그 작은 일을 일단 다시 꺼내 들어야한다. 그 작은 일이 내일, 아니면 내년에 큰 일로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당신을 포함하여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인생은 도처에서 그렇게 살고 숨을 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단은 작은 일에 목숨을 걸어야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경구를 무시해서는 천리 길을 꿈꾸지 못한다. 작가도 그렇게 제목을 정하고 한 단어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내서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초를 쌓았고, 그런 작업을 통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렇게 이론은 빠삭한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슬픔이 있다. 나중에 큰 일이 될지 말지는 모르겠고 지금은 그저 정말 사소하고도 별 일이 아닌 일을 껴안고 신경을 쓰고 긴긴 밤을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늙을수록 대범하지 못하고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로 잠을 못 자다니.
특히 잠을 청하며 눈을 감으면 하필 그 시간에 낮에 있었던 지인의 무심한 한마디, 심지어는 아내와 나눈 실없는 대화 중에 한 대목이 떠오르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말의 저의는 무엇일까, 아,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실로 하찮은 것들을 반추하며 머리는 맑아진다. 잠이 천리만리 떠나 가버린다. 웃기는 일이 아닌가. 누군가 그랬다. “인생이란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모아진 거라고.”
친구의 카톡이 들어온다. “시간을 보니 늦었군. 할 말이 있는데 늦었으니 낼 연락하지.” 무슨 일일까, 이 밤에, 묻기는 귀찮다. 요즘 한국 얘기를 자주 하던데 역이민? 그 나이에? 아니면 건강에 무슨 이상이 있나? 가슴이 종종 답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데 박동기라도 넣기로 했나? 통증병원을 옮긴다는데 정했나? 낼 아침 차라도 한잔 하자는 거겠지. 아니, 늦은 시간인 줄 알면 보내지 말아야지. 나는 무시하기로 했으나 궁금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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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