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아스포라(Diaspora)삶

2008-0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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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한달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북악산이 묵화처럼 펼쳐진 전망이 아름다운 친지의 저택에서 일주일간 묵었다.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호화주택의 주방에서 파란만장을 겪은 세 여자와 함께 극적인 시간을 보냈다.
첫째 여인은 사모님으로 불리는 이 집 안주인으로 한국의 떠오르는 신흥 귀족이다. 둘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잠깐 다니러 온 손님이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Diaspora) 삶을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 왕국이 패망하고 바빌로니아로 유배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지역 바깥으로 흩어져 살게된 공동체 민족을 말한다.

셋째 여인은 이 집의 가정부인 중국 조선족이다. 근대화된 노예의 신분이다. 수선화 같이 하얀 얼굴의 연변에서 온 이 여인은 부지런하고 친절하다.어느 날 오후, 나는 그녀와 식탁에 마주앉게 되었다.“내래 손수 빚었디요. 많이 드시라요”그녀는 내게 투박한 사투리로 따끈한 찐 만두를 먹으라고 권한다. 나는 그녀가 예쁘게 빚은 만두를 먹으며 그녀의 기막힌 사연을 듣게 되었다.몇년 전 연변에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한국에 돈벌이를 하러 왔다. 그녀의 남편은 건축현장에서 드라이버, 망치 등 연장도구가 꽂힌 가죽띠를 허리에 두른 채 시멘트 담에 깔린채 숨지고 말았다. 그의 생존현장은 기본 인권조차 박탈당한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였다.그녀의 코리안 드림은 처절하게 부서졌지만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비를 벌어야 하는 그녀의 꿈은 아직 남아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조선족들은 신기루를 좇듯 돈벌이 유랑이 시작된다. 불법체류자, 주변인,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변두리로 밀려나 소외된 디아스포라의 삶이 아닌가?왜 그들은 조상들이 개척해 놓은 만주땅을 또 떠나야만 했을까?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은 한국말과 글을 사용하고 조선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 그리고 전통문화를 보존해 온 뜻깊은 특수한 민족이다. 또한 고구려와 발해의 장수들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던 조상들의 옛 땅이 아닌가?구한말 전후, 함격북도와 평안도 변경지대에서 가난한 농민들이 도강으로 간도땅으로 건너가 벼농사를 지으며 정착하였다. 그 후 이 땅은 1910년 한일 강제합방 후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
대의 역사현장이다.민족 수난기 속에서 조국을 떠나는 민족 대이동의 물줄기를 재조명해 본다. 1937년 소련정부에 의해 연해주에서 살던 한인들 17만명이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벌판으로 쓰레기처럼 버려진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 태평양 전쟁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재일동포, 6.25
전쟁과 분단 이후 해외로 이주한 재외동포들은 고국의 바깥으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라는 집단이주 공동체이다.

연변 아줌마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듣고 있는동안 접시에 담긴 만두는 눈물에 젖어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기습을 받고 집안이 떠들썩해 졌다. 그들은 20대 초반의 여자들로 싱가폴, 홍콩, 일본, 미국 등 각국에서 기업회사 인턴, 해외연수, 학사과정을 밟고있는 그들이 연휴 휴가로 고국을 다니러 온 것이다. 그녀들이 종달새처럼 지저귀며 깔깔대고 웃는 동안 무거운 분위기는 새 바람으로 반전되었다.

그들은 태어난 국가와 현재 살고있는 거주국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전세계의 그물망을 짜고 있다. 능동적으로 기회의 땅을 선택하는 수평이동이다. 다중문화 속에서 다중언어를 구사하면서 한 국가, 민족의 틀에 갇히지 않는 글로벌 코리언으로 태어나고 있다.다음, 그 다음 세대는 수동적으로 변두리 삶을 강요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의 디아스포라의 삶을 발전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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