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핸디캡을 뛰어넘어

2008-02-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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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자신의 못남을 한탄하는 승려가 로마에 살았다. 말주변도 없고 지도력도 없고, 그렇다고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수련을 계속해도 좋은 성직자가 될 가망은 없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이상한 말에 부딪혔다.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는 구약 전도서 9장 10절의 말씀이었다. 그는 재주 없는 자기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편지 쓰기를 시작하였다. 환자나 외롭게 보이는 사람을 찾아서 몇 마디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적어 전달하는 일이었다. 뜻 밖에도 그의 쪽지 편지는 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마음을 편하게 하여 삽시간에 그의 이름이 로마 전역에 알려졌다. 이 재주 없는 승려의 이름이 발렌타인이다. 그가 순교한 기원 270년 2월 14일을 서구 사회는 ‘성 발렌타인즈 데이’로 지켜 이 날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는 전설과 함께 선물, 카드, 편지들이 오간다. 승려 발렌타인은 자신의 핸디캡을 뛰어넘은 것이다.

핸디캡은 심신장애자만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다. 약점이 없는 인간은 없다. 그것이 선천적인 취약점이든 환경과 습관에 의해 조성된 것이든 모든 사람은 약한 모퉁이,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 때로 숨기고 싶은 구석이 있다. 사회는 냉정해서 나의 핸디캡을 취업, 입학, 승진, 결혼, 비즈니스에서 평가 절하의 조건으로 삼기도 한다. 사람이 사랍답게 한 평생을 살려면 자신의 핸디캡을 뛰어넘어야 한다. 호머도 밀톤도 시각장애자였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자, 알렉산더는 곱사등이, 나폴레옹과 세익스피어는 보행장애자, 루즈벨트는 휠체어에 앉아 미국과 세계를 다스렸다. 바울은 자기 몸에 가시를 지니고 있다고 자신의 약점을 공개했지만 가
시에 굴하지 않고 “내 능력이 약한데서 완전해진다”고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았다.


2월 12일은 내가 좋아하는 링컨의 생일이다. 링컨만큼 여건이 나빴던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을까? 통나무집에서 자라나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손에서 도끼 자루를 떼어놓은 일이 없었다. 이민 동포들도 부득이 몇 개의 직업을 옮겨다니는 힘겨운 경험들을 하지만 링컨은 열 두가지 직업을 편력했다. 뱃사공, 농부, 노동자, 장사꾼, 품팔이, 군인, 우체국, 측량사, 변호사, 주의원, 상원의원, 대통령 등 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주어진 인생에 도전하였다. 그는 실패도 골고루 해 보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동업자를 잘못 만나 사업도 실패하고, 사랑하던 애인이 죽고, 의원 선거에서도 여러 번 패배의 잔을 마셨다. 그가 학교에 다녀본 것은 모두 합쳐야 1년이 되지 않으나 세익스피어 연구에서 전문가 수준이었으며 독학으로 어려운 관문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다.

링컨의 생애를 생각하면 아무도 자기의 핸디캡을 한탄할 처지가 못된다. 57세로 흉탄에 맞아 운명하기까지 그는 악조건들을 헤치며 전력을 다하여 살았다.나는 지능지체아(정신박약아)들의 스페셜 올림픽을 구경한 일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의 운동회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들이 벌어졌다. 한 아이가 넘어진 것을 보고 1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자기의 경주를 멈추고 돌아가서 그 아이를 일으켜 주었다. 1등 하기보다 넘어진 친구를 돕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어떤 아이는 결승점을 밟고서도 계속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경쟁의 승패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달리는 자체가 기쁨이며 자랑이었던 것이다.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은 결승점이다. 경주를 마친 아이들이 도착하면 보모들과 지도자들이 얼싸안고 한참동안 기쁨을 나눈다. 그 기쁨은 등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꼴찌도 기뻐하고 1등도 기뻐한다. 핸디캡을 뛰어넘은 기쁨이었던 것이다.

뉴저지주에 사는 한 사람이 농림부 장관에게 편지를 냈다. “잔디에 민들레가 자꾸 나와서 속상합니다. 민들레를 죽일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곧 회답이 왔다. “민들레를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미국다운 이야기이다. 핸디캡을 소멸시키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핸디캡을 뛰어넘는 것이 해결의 길이다. 골프공이 처음에는 매끄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의 겉이 거칠어야 더 멀리 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부터 거칠거칠하게 만들게 되었다.야구 팬들은 짐 아보트 투수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오른손이 없다. 그러나 시속 94마일의 속구를 던지며 투수쪽으로 처진 공을 잡아 일루로 송고하는 속도도 번개와 같다. 서울 올림픽에서 일본을 누르고 금메달을 따낸 선수이다. 그는 말한다. “세상은 내일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손이 하나 없다는 것에 대하여 특별히 신경쓰지 않습니다. 지금의 조건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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