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팔순 노모(老母)의 자식 생각

2008-02-07 (목)
크게 작게
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 계절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2월의 나무들은 빈 가지 위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눈송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무성하던 나뭇잎들을 미련없이 떨쳐버리고 덤덤하게 서서 겨울 내내 발가벗은 채로 차가운 눈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 마치 모진 가난을 이겨내며 묵묵히 자식들을 키워내신 그리운 어머님 모습과도 흡사하다.

올 겨울은 웬지 타향살이의 온갖 그리움 중에서도 팔순 노모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 주일에 한번씩 전화를 드릴 적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말씀 도중에 종종 목소리가 끊긴다. 한번은 어머님의 목소리가 잠시 끊기는가 싶더니 흐느낌과 함께 “큰애야, 고향 한번 다녀갈 수 없겠니. 너를 못 본지가 벌써 5년이 더 지났구나. 서로 살갗을 맞대지 못하고 살아가는 ‘피붙이’를 어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나는 그동안 많은 서책(書冊)을 가까이 하고, 훌륭한 스승님들의 가르침과 존경하는 선배, 동료들을 만났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내 어머님의 외마디 한숨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준 적은 일찌기 없었다. 이민살이에 찌든 이 못난 자식이 행여 마음 아파할까봐 울음마저 몰래 삼키시려는 어머님의 질긴 슬픔 앞에 나는 여러 날 가슴앓이를 하였다.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나는 올겨울 긴긴 밤들을 독서에 빠져 지냈다. 내가 존경하는 러시아 작가 래프 톨스토이(1828~1910)가 쓴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카레리나’ ‘참회록’ ‘홀스토메르’ 등 주요 작품 10여권의 분량을 읽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다.대 문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나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은 달랠 수가 있었다.

나는 삶이 허망으로 뼈에 저릴 때 참담한 좌절보다 더 깊은 고뇌를 안고 미운 오리새끼 저절로 물로 가듯 책 속에 파묻히곤 한다. 내가 유독 톨스토이를 선택한 이유는 그의 작품 중에서 사회소설 또는 가족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안나카레리나’를 읽으면서 어머님이 던진 화두, ‘피붙이(가족)’이라는 의미를 깊이 한번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을 이태 앞두고 전세계적으로 풍성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불후의 명작을 읽는 의미를 더해 주었다.

독특한 서술관점으로 1860년경 러시아 귀족사회의 결혼 및 가정생활을 몇 가지 경우로 나타내 보이는 이 작품은 인간이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슬퍼도, 상처받아도, 진정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따뜻한 가족의 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좋은 가족은 서로 서로 사랑을 베풀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와는 달리 당시 톨스토이가 겪고있던 심적 갈등이 반영돼 있어 가늠하기 어려운 대 문호의 정신적 깊이와 폭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다.

엊그제가 입춘(立春), 그러나 정작 봄으로 가는 길목이기에는 너무 이른 지금, 바람소리인지 나뭇가지 소리인지 모를 야릇한 괴성들이 밤마다 울려퍼진다. 그것은 마치 타향살이에 지친 가련한 민초들이 울부짖는 아우성같기도 하고, 못난 이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신음(呻吟) 소리
가 애달픈 환청이 되어 내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이 많은 2월에는 작은 바람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겨울 바람소리는 나와 같이 고뇌와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방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법인가 보다.

특히 이번 주 고국에서는 설 명절을 맞아 저마다 지친 일상의 틀을 벗어나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찾아드느라 부산할 것이다. 하지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살갗을 맞대지 못한 자식을 그리는 팔순 노모를 생각하니 그저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하여 나는 고독한 이민살이에서 오는 신산(辛酸)을 다스리려고 수돗물을 받아 홀로 찻물을 달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