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선거, 우린 왜 조용한가

2008-02-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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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 <논설위원>

한인사회에서는 한국의 대선 때마다 후원회다 뭐다 하며 나온 후보들을 지원하는 열기가 뜨겁다. 우리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선거에 참여해 투표할 사람도 없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선 때면 언제나 상당수의 한인들이 너도 나도 나서서 선거운동을 뜨겁게 벌여왔다.

그런데 왜 미국선거에서는 그와 같이 열을 못 내나? 이곳에선 아무리 해도 뭐 하나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인가. 그나마도 무슨 무슨 후원회다 하는 조직이 생기는 건 대부분 후보들에게 모금 좀 해주고 그 후보가 나오면 같이 사진 한 장 찍어 두고두고 간직하거나, 아니면 집안에 걸어두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에게 과시용이나 선전용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요즈음은 좀 달라졌겠지만 아직도 선거에 적극 참여하고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목이 터져라 캠페인을 해도 관심을 거의 안 쓰는 게 한인이다. 그러면서 한국선거라고 하면 시키지 않아도 열을 내고 적극성을 띠는 것이다.


선거라고 하는 것은 사실 현실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선거에 참여해야지 우리에게 득이 되지 한국선거에 아무리 관심 갖고 열을 내도 도움이 되는 게 없다. 우리 정부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한인회 같은 곳에서 무슨 행사한다 하면 영사관에서 얼마 얻어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미국대선은 우리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 지역 의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지역 현실에 직결되고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나온 후보들의 정견도 잘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기서 이민문제 같은 이슈가 나오면서 선거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미국인들은 보면 선진 국가답게 재외 국민을 재내 국민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 준다. 그러나 한국정부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무슨 문제가 터져야 체면상 할 수 없이 해결하려 들지 그렇지 않으면 관심조차 갖으려고 들지 않는다. 파키스탄에 억류됐던 아이들, 소말리아에서 납치된 어부들, 아프카니스탄에 억류됐던 선교사들, 이런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니 시끄럽지 그렇지 않을 경우 재외국민들이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정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은 갑자기 경제가 좋아져 온 국민이 흥청망청 하긴 해도 의식은 아직도 아프리카 오지의 수준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아무리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살고 있어도 마음은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사는 그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경우, 재외국민은 금 쪽 같이 생각한다. 미국에서 유대인이 큰 소리치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본국에서 재외국민을 확실하게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해외 어디에 살더라도 늘 마음속에 내 나라가 있다 생각하고 어디서건 외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 일예로 태안반도에 기름 유출사건이 일어나자 해외 한인들은 즉각 한국에 기금모금을 해 보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동포가 해외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 때 과연 한국에서는 한 푼이라도 이곳에 보냈었나? 우리들은 한국에서 큰 화재가 나거나 홍수, 가뭄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비록 적은 돈이라도 흥청망청 잘사는 한국에 모금해서 보냈다.

의식의 수준이란 잘 산다고 해서 높은 것이 아니고 못산다고 해서 낮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을 어느 쪽으로 두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미국의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가 중요하다. 아무리 우리가 이곳에서 한국의 정치나 경제를 바라봐도 그 것은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는 말은 그 나라에 살면 그 나라의 모든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은 지금 얼마 남지 않은 대선으로 전국이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이번 수퍼 화요일 선거에 과연 나는 한 표를 행사했는가, 아니면 아직도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 보듯 하였는가, 우리가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사는 길은 무엇인가? 이 나라에 맞춰 미국의 한 국민으로 분명하게 사는 것이다. 목청을 돋우는 2세들의 가두 캠페인에 이제는 제발 귀를 기울여 더 이상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선거를 외면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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