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 롱 넘버…”

2008-02-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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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병 국 (광고기획사 대표)

오전 8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침 일찍 무슨 전화인가…?’ 전화를 받아본다. “핼로…. 마이 네임 #@$&…” 하면서 의례적인 녹음 전화가 시작이 된다. 녹음이 시작된 후에는 상대방 대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속 반복한 후 가차없이 끊어버리고 만다. 물론 들으나 마나 뻔한 내용인지라 녹음이 시작됨과 동시에 미안하지만 수화기를 그대로 내려놓는다.

요사이는 이런 내용의 전화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오니 혹시나 하고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대부분의 이런 공해 전화로 하루종일 시달리게 하고 있다.어느 경우 긴장한 가운데 수화기를 들었을 때 “여보세요, 아무개 계십니까?…” 한국말이 들려오면 반갑기 이를 데가 없다. 수화기만 들었다 하면 “#@$&…?”로 시달리던 수화기에서 친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오히려 신기한 기분이 들 정도이라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닌가.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들기가 어딘가 꺼림직한 입장인데 이것이 바로 공해인 것이다. 전화는 왜 설치해 놓고 속을 상해야 하는지 필자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래 이러한 공해 전화는 일반 가정과 직장 등에 마구잡이로 난립을 하고 있다. 직장의 경우 Fax의 벨이 울리고 난 후 상술에 얽힌 내용의 팩스가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요사이 우리 한인 가정 아낙네 또는 노인들에게 잘 활용되고 있는 영어 한 구절이 있다.

“유 롱 넘버…”이다. 수화기를 들고 “#@$&…”만 나오면 무조건 ‘유 롱 넘버”다. 한번은 항상 “유 롱 넘버” 하던 집사람의 기지로 불이익을 당할뻔한 사고를 모면한 적이 있다. 하루는 걸려온 전화를 받은 집사람이 “유 롱 넘버”하지 않고 어딘가 이상하니 받아보라면서 수화기를 건네준다. 전화 내용은 콜렉션 에이전시 아무개인데 내가 어느 은행에 6,000달러를 미납하였다며 추궁을 하는 것이다. 자세히 알고보니 ‘권’이라는 성씨는 같은 사람이었는데 소셜번호를 확인한 결과 엉뚱하게 다른 사람임을 확인하고 미안하다면서 이를 무마한 사건이 있었다.평상시 “유 롱 넘버” 하던 집사람의 순간적인 육감으로 화를 면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무조건 회피할 수도 없고… 전화 공해가 심각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인가정에 걸려오는 공해 전화의 내용 중에는 종류 미상의 경품 또는 상금에 당첨되었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 또는 공과요금 미납에 따른 은행구좌번호와 크레딧카드 번호를 문의한다든지 어느 단체의 기금 조성에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사기내용들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경우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홍보 차원의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 내용들을 귀담아 들을만한 영어실력도 미천하지만 공해 전화로 울려오는 모든 전화 내용에 대해선 어떠한 흥미나 기대도 없을 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전화로 상대방의 계좌번호 또는 개인 신상에 관한(특히 소셜번호 등) 사항을 문의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검증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무조건 답변을 회피하는 “유 롱 넘버”가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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