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나라의 두 언어

2008-02-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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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영어는 바야흐로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 국제회의에서 이를 사용하거나, 인터넷 사용으로 영어가 퍼지는데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는 세계의 최우수 언어인가. 이것을 가리려면 우선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수단과 체계를 말한다. 그 중의 영어는 영국을 비롯한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공용어를 말한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다고 말하던 시절의 영국 식민지였거나, 영국 이민들이 시작한 나라들이 영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왜 많은 나라에서 영어 붐이 일어나고 있는가.그 큰 이유는 실리를 살리려는 까닭이다. 나라마다 세계의 공통 언어인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여 교환 무역량의 증가를 꾀하고, 외교를 원활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또 개인으로는 영어 사용력이 취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기능으로 간주되어 신분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영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우열이란 있을 수 없고 거기에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미국의 영어와 한국의 영어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미국의 영어는 생활의 도구이다. 즉 영어 능력에 따라서 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영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불리함을 당하게 된다. 한국의 영어는 상용하는 모국어가 있고, 필요에 따라서 가외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이번에는 미국의 한국어와 한국 내의 한국어는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본다. 미국의 한국어는 이민들의 다양한 언어 중의 하나이다. 미국 내 한국어는 이중언어 사용 뿐만이 아니라 다중언어 사용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언어이다. 한국 내의 한국어는 상용언
어이고 공용언어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두 나라에서의 영어와 한국어의 위치가 명확해진다.

‘요즈음 한국 내에서 영어교육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영어몰입교육 운운, 초·중·고의 영어시간을 늘리자 등등의 말이 오가고 있는데, 여기서 굳이 한국어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요?’ 새 학기 시작 날 학부모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답은 분명히 ‘그렇다’이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미국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국력을 세계로 넓히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2세들의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두 나라에서 한국어와 영어 학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다른 언어를 많이 알수록 다채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창문의 수효를 늘리는 격이다.

거기에 필수해야 하는 언어들은 기본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큰 창문이 된다. 이 큰 창문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한국 내에서 영어를 배우거나, 미국 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데 가장 힘든 것은 어순의 이해라고 본다. 어떤 언어 학습이거나 단어를 외워야 하고, 그것을 차례로 나열하여 어떤 생각을 말이나 글로 구성해서 의사가 통하도록 하는 작업은 똑같다. 그런데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혼동이 큰 것이다. 잊고 싶은 일이지만, 일제시대는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일어로 생활용어 사용이 가능하였다. 그것은 두 나라의 말이 가진 어순이 같기 때문이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며 깨닫게 된 것은 하나의 언어를 똑똑히 배워 바르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언어도 명확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학교 학생들이 우선 영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길 바란다. 또 한국어를 배운다고 영어를 소홀히 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내에서 일찍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한국어의 바탕을 다지는 일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요즈음만큼 언어교육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국가로서는 국력을 나타내는 상품의 하나이고, 개인으로서는 생존 능력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선택권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 내의 한국어 교육과 한국 내의 영어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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