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일

2008-0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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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모(UMC 원로목사/수필가)

70년대 초반, 야외예배 때면 제법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목사님, 이거 미국 와서 남자들은 완전히 마누라 노예가 됐습니다” 그 날도 마누라 구설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골프를 포기한 K는 숯불구이용 석탄 자루를 나르면서 나에게 투정한다.

탈레반은 여성 교육을 법으로 금한다. 그간 탈레반 무장 게릴라의 습격으로 파키스탄의 130개의 학교가 전소되고 여학생 및 교사들 130여명이 사살당했다. 옛 한국에서도 여성 교육은 안 했다. 양반집 규수나 집안에서 글공부를 했을 정도다.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여성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려진 여아들을 모아 가르쳤다. 보수 수구파의 음모로 “아이들을 미국에 노예로 팔아 넘기거나 피를 빼서 외국에 수출한다”는 유언비어를 냈다. 정부에서 갑자기 선교활동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영아소동(Baby Riot)으로 학교와 병원이 군중의 습격을 당했다. 6주만에 오해가 끝나고 다시 여성 교육이 시작됐다.


1897년 12월 31일, 정동교회 예배당 봉헌 축하행사로 청년회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여성을 교육하고 동등으로 대하는 것이 가하냐?”였다. 회중들이 자원하여 가부(可否) 양편으로 나뉘어 토론을 벌였다. 가편에는 미국 시민권자 서재필, 조한규, 부편에는 윤치호, 김연규가 연사로 나왔다. 여성회원들은 연사로 나설 수 없는 시대였다.미국 유학을 하고 왔음에도 윤치호는 인류의 타락이 여자 때문이라고 하면서 여성 교육은 타락
을 조장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에덴동산에서도 남자가 여자의 말에 넘어갔으니 여자가 교육 받으면 남자는 더 옴짝달싹 못한다는 것이 윤치호의 논리다.

토론 분위기는 부편으로 기울었다. 이 때 여성 회중석에서 암탉(?)이 크게 울어댔다. “하와만 보지 말고 마리아도 보시오” “마리아가 없었으면 어찌 그리스도가 존재하오?” “옳소” 여성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토론은 난상토론이 되었다.남성들 앞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자기 의견을 당당히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과서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여성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10년 전의 일이다.여필종부(女必從夫)의 남존여비(男尊女卑)로 막혔던 담을 헐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이 되어 십자가에 제물이 되셨다(엡 2:14). 이 복음이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1910년부터 예배당의 남녀구별 휘장이 철거되고 남녀가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화학당은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다. 여선교사들의 교육에 감동되어 엄비도 숙명여고를 세웠다. 이화학당 출신 여매례는 왕후 엄비의 지원을 받아 진명학교를 세웠다. 감리교회가 먼저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했다. 지금 남녀평등 교육을 새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남녀는 평등해졌다. 그런데 왜 남자들 입에서 농담이라도 엄처시하(嚴妻侍下)라는 말이 나올까. 50여년간의 목회현장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말을 남편들로부터 들었다.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가고.여필종부(女必從夫)의 시대도 지났는데 남필종부(男必從婦)라니 남자들의 엄살인가. 스트레스는 발병의 원인도 된다. 임종 직전까지도 부인을 용서하지 않고 죽은 P를 기억한다. 남편의 장수를
위해서 이제는 여성들이 한번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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