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적을 말하는 사람들

2008-0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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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기적이라고 말을 한다. 전후 독일의 경제성장을 두고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말을 하더니, 듣기에도 어쩐지 거북스러운 그 ‘기적’이란 말이 한국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의 유행어로 번졌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과연 기적이었던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기적의 공로자가 여기 저기에서 나타난다.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라에서 애국가의 가사 조차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대목이 있으니 분명 기독교인들의 통곡 기도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무릎이 까지도록 부처님에게 염불을 한 불교의 스님이나 불자들의 공로같기도 하며, 또한 후학들을 잘 가르친 선생님이나 학자들의 공로같기도 하다. 또한 잘 만들었던 못 만들었던 간에 상품으로 만들어 놓은 물건을 들고 전세계를 발품으로 다니면서 선전하며 판로를 개척한 장사꾼들의 공로같기도 하고, 그 물건들을 땀 흘려 만들어낸 공장 기술자들의 공로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어낸
진정한 동력은 고난을 겪으며 닦아온 숨어있던 민족의 저력이요, 쌓아놓은 교육, 그리고 개방정책이었다.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오히려 무엇이든지 더 잘 해내는 민족성이라던가, 기르던 소가 새끼를 낳으면 어미 소 팔아서 등록금을 대주던 부모들의 교육열이라던가, 정부가 이끄는 관료적 시장정책이 아니라 자유시장 정책으로 전환한 시장개방 정책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기적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급성장 시켰던 것이다.유래가 없는 지구상의 대 사건, 꿈도 꾸지 못했던 세계 제일의 산업을 대한민국이, 한숨으로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던 우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조선 산업, 세계 제일의 컴퓨터 산업, 세계 제일의 휴대전화기 산업, 세계 제일의 철강산업 등등. 피나는 노력이었다.

79년도, 12.12가 끝나자 80년도 초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때가 있었다. 한국과의 외교관계가 빈약했던 당시, 전두환 혁명(?)주체세력에 협조했다가 밀려난 호남 출신의 임동원씨가 서넛의 직원과 함께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서 불만을 품고 귀양살이 대사 직분을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이곳 저곳 일을 보고 다니는 도중 로고스 항구 근처 모래바람이 부는 길가에 삼성물산이란 작은 간판이 군정에서 민정으로 막 바뀐 나이지리아 길가에서 얼굴을 내밀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로부터 정부의 진출보다 장사꾼의 진출은 언제 어디서나 더 빨랐다.

장사꾼들이 닦아놓은 미지의 길을 정부가 뒤따라 가는 것은 옛날부터 상례인데, 삼성물산 장사꾼의 그런 부지런함과 개척정신을 보고 삼성은 세계 속에서 성공할 것이란 예감이 그 때 이미 생겼고 한국의 경제 발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음을 가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그런 장사꾼이 한 둘이겠는가? 뉴욕의 한인사회는 거의 장사꾼이거나 장사일 속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멍가게 김밥장사, 죽 장사로부터 시작해서 납품이나 자동차 판매나 거대한 건축사업까지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장사의 종류나 장사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 지금 이민오는 사람들은 아파트 한 채 팔아 거금을 손에 쥐고 오지만 소위 말하는 우리 이민 1세들은 거의 빈손으로 이 땅에 오다시피 했는데도 지금은 뉴욕시를 비롯해서 중소도시의 시청 직원은 물론이고 미국의 국회의원들도 교민사회의 행사를 외면할 수 없을 만큼 교민사회의 경제력 발전은 큰 몸집으로 신장되었다. 피땀이었다.

어찌보면 거금을 들고 온 새 이민자는 그 돈의 위력으로 학군이 좋다는 좋은 동네에다 큰 집부터 사고, 일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장사거리를 찾으면서 이민 개척자인 이민 1세들의 행보를 가엾이 여기며 이민 1세를 구경하는 관람객인지도 모른다. 이민 1세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뉴욕의 한인 경제발전을 두고 또 기적이라고 말할런지 모른다. 그 때에도 또 우리들의 기도 덕분, 우리들의 염불 덕분, 우리들의 돈 덕분, 우리들의 생산 덕분이라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기적이 아니다. 이민 1세들이 흘린 뜨거운 피땀의 열망이었던 교육열이었고, 새벽 별, 밤 달을 보며 출퇴근을 한 지속적인 근면이었다. 미국의 정가와 재계를 움직이는 주이시들의 축적된 자본금이나 금융을 보고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도 우리 이민의 역사와 흡사한 가난과 차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근면을 배경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지 기적을 바라고 산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가 기적을 말하는가? 세상에 기적은 없다. 파는 대로 깊어지고, 심은 대로 나고, 펴는 대로 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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