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캔디, 외롭고 슬플 땐 울어도 돼”

2008-01-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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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뉴욕가정상담소 애프터스쿨 코디네이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옛날 큰 인기를 끌었던 TV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노래 가사 중 한 부분이다. 70년대에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극 중의 캔디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를 잃은 천애고아로 주변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씩씩한 여자아이다.

어린 시절, 이 만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캔디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참 분개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하루가 멀다하고 캔디를 괴롭히는 못된 이라이자를 보면서 “나라면 한 대 콱 쥐어박을텐데, 아유 캔디는 맨날 당하기만 해”라면서 혼자 속을 썩였던 것 같다.사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나는 상황인데도 주인공인 캔디는 정말 노래 가사처럼 울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음으로써 그녀를 괴롭히는 이라이자를 더 분노에 떨게 만들었다.


필자가 오늘 캔디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캔디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외롭고 슬퍼도 겉으로 잘 드러내지를 않는다. 사실 외롭고 슬픈 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정서는 이렇게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너그럽지 못하다. 슬퍼서 울고, 화가 나서 화내고, 외로워서 외롭다고 표현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남자들에게 더욱 강조된다. 어린 남자아이가 울어도 “사내녀석이 고깟 일로 울어. 남자는 울지 않는거야”라고 가르친다.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잘 참고, 잘 드러내지 않으며, 웃어 넘기면 ‘외유내강’ 내지는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적절히 표현되어지지 않은 감정은 어떻게 될까? 그저 웃음 한 번으로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까?

그렇지 않다. 그 감정들은 마음의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쌓인 것이 넘쳐나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한국 어머니들의 고질병인 ‘홧병’은 이런 부적절한 감정 표현의 결과물이다. 표현되어지지 못한 슬픔, 분노, 억울함, 고독, 심지어는 기쁨까지도 결국 본인의 몸과 마음을 공격하게 된다. 분노 조절이 안되는 사람들, 우울증에 고통받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적절한 감정 표현법을 모르는 아이들은 왜곡된 방법으로 표현을 한다. 잦은 실망과 좌절을 겪은 아이들은 남을 말이나 힘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화를 제 때,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 아이들은 짜증이 유난히 많다. 행복한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억제된 아이들은 매사에 흥미가 없거나 우울하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부주의로 야기된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는 남자아이는 진짜 남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그 아이를 강인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곡된 방법으로 슬픔을 표현하게 되고 나아가 타인의 슬픔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본인의 슬픔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화를 표현할 때도 버릇 없다고 나무라기 이전에 “화가 났구나” 한마디 말과 조금 더 완곡한 방법으로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어떨까? 다시 처음의 캔디 이야기로 돌아가서 많은 이 시대의 캔디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외롭고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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