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들의 정신’을 회고한다

2008-01-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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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때는 1999년, 그리 멀지않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3월 18일, 오후 8시 정각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된 채널 13(WNEF Ch. 13)의 프로그램 ‘한인(들)의 정신(Korean American Spirits)’은 한인들의 미국 이민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게릭호’가 105년 전, 1903년 ‘자유와 번영’(Freedom and Prosperity)의 꿈을 안은 102명의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사람들을 하와이에 내려놓은 이후 처음으로 우리 한인들을 사는 모습 그대로 긍정적으로 알려준 계기라고 믿는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를 1965년 개정이민법 이후로 잡는다면 34년만의 쾌거였다.


하기야 그 사이 국적기인 대한항공이 민영화(1969)된 후 3년만인 1972년 4월 LA공항에 그 모습을 나타낸 후 타임 잡지(Time Magazine)는 “한국인들이 몰려온다”(Koreans Are Coming)고 커버스토리로 장식, 지지리도 못 살던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한강의 기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오늘의 경제 강국으로 만든 박정희 시대를 독재라 부르며 날마다 벌어졌던 길거리 데모는 외국 언론들의 좋은 기사감으로 경찰과 대치하는 군중들의 사진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와중에 터진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는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었다. 1973년 이민자로 이 땅에 살고있던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적인 기사들이었고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올해가 단기 4341년으로, 소위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언론방송에 매맞고 있는(Korea Bashing) 그런 나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곳 주류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시켜 주고 싶었다. 아무리 인구 3억을 가진 이 나라에서 겨우 100만명 안팎인 소수민족 중의 소수민족이더라도 ‘한국인들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메니페스토(Manifesto)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24시간 일하는 한인이니 하는 피상적인 이야기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우리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라 생각했다.하기야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참전된 희생된 미군들의 추모비에도 나타나듯 그들은 우리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세월이 지났다. 20여년의 세월이다.

1994년 11월, 채널 13 한인후원회가 결성된 근본적인 이유는 전국 357개 공영방송국 중에 최대인 채널 13을 도우면서 우리 한인들도 이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에서 빛나는 공헌을 하고 있다는 메시지의 전달도 갖고 있었다. 도우면서 도와달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이심전심(以心傳心)인지 채널 13의 빌 베이커 사장의 배려로 역사적인(감히 역사적이라 표현한다) ‘한인들의 정신(韓人들의 精神)’이 방영된 것이다.

당일 1회 방영에 25만명의 시청자가 기록되고 방송국은 14만5,000 달러를 모금했다. 그 모금액으로 중국을 포함한 소수민족 시리즈(Ethnic Series)가 만들어지고 1851년 창간되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뉴욕타임스는 방영 1주일 후 한인식당에 대한 전면기사를 실었다.뉴욕한국일보와 제휴한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24일에도 뉴욕의 한국문화 집중 소개로 “비빔밥부터 초대형 스파까지(From BiBim Bop to Huge Spa)”라는 제하로 한인사회를 조명하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은 항상 어렵다. 좋은 이미지 심기도 어렵지만 그 이미지 유지는 더욱 어렵다. 이민 105년을 맞으며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봄은 너무 자화자찬을 지나 자가당착적이 아닌가 자문(自問)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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