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새를 탑시다

2008-01-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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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그랜드캐년에 갔을 때 노새 부리는 사람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님 중에 가장 성미가 급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온 회사의 높은 어른들이라고 한다. 그들이 처음 노새를 타면 그 느릿 느릿한 걸음에 신경질을 내고 욕을 하고 노새의 배를 차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새들은 본래 성격이 느긋한데다가 손님을 안전하게 태우기 위하여 천천히 걷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질 족속들이 아무리 바빠해도 자기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움직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한 시간만 노새를 타면 초조한 빛은 어느덧 사라지고 신경질도 잦아지며 노새처럼 릴렉스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황 때는 노새 철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 본래 성미가 급한 사람도 노새를 타고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가는 기분을 갖는 것이 좋다.

맨하탄에서 목회할 때 자주 가던 중국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은 25년 동안 식당 경영을 하였는데 인종에 따라 스프 먹는 식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독일 계통은 스프의 재료를 곧잘 묻는다. 프랑스 사람은 한 스푼씩 천천히 입에 나르며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 일본계는 “맛있다, 맛있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는다. “그런데 한국인은 어째서 스프를 그렇게 서둘러 먹느냐?”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한국인은 본래 서두는 타입이 아니다. 반도이긴 하지만 대륙성 기질이 있어 잘 참고 잘 기다리고 시간에 대하여 여유있게 대하는 동양인의 느긋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양인보다도 오히려 참을성이나 기다리는 여유에 있어서 부족해진
느낌이다.


동양에 겁(劫)이란 시간의 단위가 있다. 대겁, 중겁, 소겁이 있는데 소겁의 길이는 4백리(160km) 사방의 성벽 속에 고추 씨를 채워 넣고 3년에 한 번씩 한 알씩을 꺼내 그 성 안의 고추 씨가 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다. 중겁은 그 성벽이 800리 사방이고 대겁은 1,200리 사방이다. 서양인은 이렇게 긴 시간의 단위를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다. 현대인이 들으면 무척 지루한 이야기 같지만 동양인의 정신적 뿌리는 스케일이 그만큼 컸고 여유가 있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스피드의 약점은 교만, 자기 의존, 과대광고, 실언, 오해, 망동 등 수없이 많은 부작용을 드러낸다. 5초만 더 생각하면 주먹이 안 나가도 되고, 10분만 더 생각하였어도 엄청난 오해를 안 해도 되었고, 하루만 더 생각하였다면 그런 손해를 안 보았을 터인데 하고 후회하는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스피드를 내고 있다. 한 대라도 앞차를 앞지르려고, 한 발자국이라도 남보다 앞서려고 한다. 그러나 “어디를 향하여 그토록 빨리 가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스피드 시대에 나는 낙타를 타고 맨하탄 브로드웨이를 걷는 공상을 해보았다. 낙타가 자동차보다 우수한 점은 많다. 낙타처럼 아무 것이나 잘 먹는 짐승도 드물기 때문에 우선 운영비가 적게 든다. 바퀴가 터지는 사고도 없고, 소음이나 배기개스를 뿜어내어 공기를 오염시킬 염려도 없다. 짐도 많이 싣고, 교통사고를 당할 걱정도 없다. 게다가 사람들의 흥미도 많이 끌 것이다. 캐딜락을 몰고 다녀도 아름다운 여성이 태워달라고 신청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낙타라면 그런 미인 신청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낙타 목에 “휘발유 절약중”이란 표말을 매달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면 대통령도 기뻐할 것 같다.

현대를 ‘라이트 시대(the age of light)’라고들 한다. 식품점에 가면 500종 이상의 라이트 식품이 나와 있다. 살이 찌지 않도록 만든 다이어트 식품들이다. ‘라이트 시대’는 식품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속성시대를 말한다. 독서도 테입이 나와 세계 명작을 10분만에 줄거리만
들을 수 있다. 노력은 안 하고 속성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라이트 경향의 시대가 되었다. 빨리만 가고 속이 차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치인들도 빨리 표적을 잡으려고 공약을 남발하여 후세에 빚을 물려주는 무책임한 일을 예사로 한다.

또 현대를 ‘즉석 대답의 시대(the age of instant answer)’라고도 말한다. 사람들은 조급해서 즉석에서 해답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속도는 인간의 속도와 다르며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한다. 흔히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시간으로부터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시계에 나의 인생을 맞추어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생각하여 시간을 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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