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에 산다

2008-01-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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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전 MBC 아나운서)

이 세상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삶이란 없다. 살아가는데 있어 천재도 없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경험하는 것이고 연륜이며 경륜이다.
산다는 것이 결과에 있는게 아니라 과정이라면 미래보다 현재가 더없이 소중하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를 우선으로 친다.

인간은 한평생 세상을 배우다 그치고 마는 한시적인 존재다. 아는 일보다 모르는 일들이 수없이 깔려있기 때문에 평생동안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이 변해버린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생각도 달라지게 되어 있다. UCLA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로저 골드 박사가 인간의 발달과정을 일곱 단계로 구분한 적이 있다. 16~17세는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도망의 시기, 18~22세는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탐색의 시기, 23~28세는 생존을 위하여 발버둥치는 투쟁의 시기, 28~34세는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는 회의의 시기, 35~43세는 초조와 위기를 느끼는 불안의 시기, 45~50세는 정신없이 살아온 과거를 비로소 돌아보는 반성의 시기. 50세 이상이 되면서부터는 나를 알고 나와 너의 관계를 제대로 보는 성숙의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라 하였고 50이 되어 천명(天命)을 알고, 60이 되면 이순(耳順)이라 귀가 듣는대로 순종하며 70에 이르러 법도를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흐르는 세월을 통하여 시간의 비밀을 깨닫게 되면 그만큼 삶도 영글어 간다. 인생 경륜이 그것이다. 어쩌면 인생을 인생답게 헤아릴 줄 알고 세상 이치를 스스로 일깨우는 일이 전생애를 요하는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보면 실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과거와 미래는 오늘 이 순간과 관련됨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일생일사(一生一死)의 원칙을 갖고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면서 과거에 매달리고 미래를 염려하기에는 우리네 삶이 너무나 짧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찧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그릇에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이다. 톱질이 끝난 톱밥을 다시 톱질할 수는 없다. 과거란 마치 톱밥과 같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들이 겪는 불안과 초조는 오늘 때문이 아니라 이미 가버린 어제이거나 다가오는 내일 때문이다. 스치고 지난 세월에 발목잡혀 허덕이는 것도 볼성 사납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을 미리 앞질러가는 건 근심 걱정을 자초하는 일이다.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이 있지만 하나님의 달력은 오직 오늘이 있다는데... 인생의 실재는 현재며 순간에 들어있다. 삶을 보람으로 엮어가려면 이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일이다.이 순간을 떠나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도 없다. 세상도 없고 인생도 없다. 이 순간을 놓쳐
버리면 거기에 인생이 있을 턱이 없다. 잊을 건 잊고, 버릴 건 버리고, 끊을 건 끊어내야만 오늘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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