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이 깊었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오

2008-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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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내 집 뒤뜰에는 아름드리 고목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다. 이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무는 혹한의 칼바람이 불고 폭설이 휘몰아쳐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내가 유난히 이 거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끈질긴 생명력과 넉넉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 뉴욕에는 다행히도 혹독한 추위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평년 기온을 웃돌며 연일 따뜻하던 날씨가 최근 갑자기 추워져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지금이 바로 일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의 절기였다. 지구 온난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대한은 여지없이 추위를 몰
고 온 것이다.


나는 낯선 이국땅에 살면서 요즘과 같이 혹한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이 닥칠 때마다 저항 시(詩)로써 한때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겨울이 만일 온다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는 시 구절(詩句)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이 시구는 미국 시인 퍼시 비시 셀리(Shelley:1792~1822)가 쓴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까이 있다는 말을 자주 원용(援用)하면서 인생의 역경을 견디어 낼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소한과 대한이라는 혹한의 큰 강을 건넜으니 셀리의 노래처럼 이제 봄도 멀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언제 다시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칠지 모르는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혹한이 몰아치면 무엇보다 우리 서민의 삶이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더구나 오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금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졌지만 너무 움츠러 있지 말자.

겨울이 없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현상을 ‘춘화현상(Vernalization)’이라고 하는데 튤립-백합-철쭉-진달래 같은 아름다운 봄꽃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치 춘화현상을 거치는 꽃과 같아 고통 없
이는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없는 법이다.

눈부신 인생의 꽃도 인생의 혹한을 거친 뒤에야 꽃망울이 맺히는 법이다. ‘누구도 고통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곱씹어 본다. 누가 고통을 경멸할 수 있을 것인가, 고통 없이 세상을 빛낸 자, 고통 없이 세상에 우뚝 선 자 어디에 있는가 한번 역사를 돌아보자.

옛날 주나라 문왕은 은나라의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사서오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을 만들었다. 공자도 역시 주유천하를 하다 마지막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값진 ‘춘추(春秋)’를 썼다. 굴원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자 ‘이소경(離騷經)’을 지었다. 손자는 다리가 끊기는 형벌을 받고나서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완성하였으며, 여불위는 촉나라로 귀양을 갔기 때문에 ‘여람(呂覽)’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사마천은 궁형(宮刑)을 받고서도 자결하지 않고 위대한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남겼다.

이처럼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서 더욱 강해지고 향기로워지는 법이다. 조개도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낸 다음 고통을 이겨내면서 영롱한 진주를 품는다고 하지 않던가. 쇼윈도우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마네킹의 뒤편에는 수많은 시침들이 아프게 꽂혀 있듯이 언제나 성공한 인물의 일생 뒤에는 수많은 고뇌와 좌절과 고통의 흔적들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이 겨울의 혹한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그리고 아직도 인생의 겨울 한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고 행복한 내일을 향한 꿈을 잃지 말고 한 그루 거목처럼 어떠한 역경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자.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운 만큼이나 아름다운 새 봄, 아니 인생
의 새 봄을 맞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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