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제한속도의 비현실성…

2008-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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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지난 주말 고속도로 과속운전으로 티켓을 받았다. 마켓에서 생필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주일 오전 일찍 1부 예배를 마치고 충만(?)했던 마음은 티켓 한 장에 완전히 구겨져버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하루 종일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무기력감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생활 8년 만에 처음 받은 티켓으로 지난 20년간 깨끗했던 미국의 운전기록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50마일 구간에서 72마일로 달렸다고 하니 21마일 이상 과속이어서 벌점 6점까지 떠안아 당장 큰 폭의 보험료 인상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뉴욕주 고속도로 경비대가 티켓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쌩쌩 거리며 지나쳐 달리는 차들을 보니 야속하고 은근히 부화도 치밀었다. 일반 로컬도로도 아니고 고속도로 선상이었는데 그곳의 제한속도가 50마일이었다는 것도 사실 그날 처음 알았다.


세상에! 무슨 고속도로가 제한속도 50마일이란 말인가? 새삼 기가 막혔다. 그러고 보니 어떤 고속도로 구간은 출구도 아니건만 제한속도 45, 심지어는 40인 곳도 있다. 제한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차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속도제한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내 일부 주에서는 이미 90년대 중반에 주내 대다수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를 55마일에서 65마일로 현실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제한속도를 올리면 그만큼 차가 더 빨리 달려 위험하다는 일부의 지적도 결국 기우였음이 증명된 바 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터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뉴욕에서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40~50마일이라니 너무나 현실을 외면한 조치가 아닌가?
또 다시 과속 티켓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티켓을 받은 후로 며칠은 간이 콩알만 해져 제한속도를 꼬박꼬박 지키며 운전을 하고 있다. 천천히 달리다보니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도로 옆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느껴지는 새삼스러움도 솔직히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뒤에서 바짝 추격하던 차들이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다 갑자기 차선을 바꿔 추월하기도 하고 옆 차선에서 흘깃거리는 운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가능한 무시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더 큰 사고를 예방하려고 지금 미리 티켓을 받아 둔 것이려니 하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요행히 경찰의 눈에 띄지만 않았을 뿐이지 숱하게 제한속도를 넘겼으니 이번 티켓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는 자기합리화도 시켜본다. 동시에 평소 운전을 잘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과신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뉴욕주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지키지도 않고, 지켜지지도 않는 허울뿐인 제한속도 표지판보다는 현실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속도제한이 반드시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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