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이곳에는 안 오는가

2008-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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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숙(아스토리아)

한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인들만 있는 양로원에서 만난 두 한인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나를 몹시 괴롭힌다. 인생의 말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스한 가정에서 보낼 수가 없어 양로원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최소한 언어소통은 되는 곳이어야 되지 않는가.

몸이 절반이나 마비되어 한쪽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손으로 몹시 편찮은 강 할머니를 보살펴주시는 천사의 모습으로 반영되었던 김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아주 성스럽게 느껴져 마음이 숙연하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과 현실의 실체를 초월한 영적인 경지에서의 아름다움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가슴 깊숙히 아픔을 주는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실상이다.


할머니들의 외로움과 불편함이 많이 감소될 수 있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양로원으로 이동시켜 드리고자 노력하였으나 할머니들의 서류미비 문제로 인하여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 할머니들을 혹독하게 차가운 눈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길거리에서 기거할 수 밖에 없는 무숙자들보다는 아주 크나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분명한 사실에 더 이상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부인할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병환이 인사불성인 강 할머니가 병원으로 이송되고 다른 한국 할머니가 새로 오셨다. 걷지 못하시는 것과 정상적인 노환 외에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없으므로 말씀을 아주 잘 하시는 이 할머니이시다.
병세가 악화된 강 할머니에 관한 슬픔, 그리고 이제는 김 할머니의 독백들이 서로 주고 받는 대화가 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과 안도감이 나로 하여금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평소에 할머니들은 가끔 혹은 자주 방문하였으나 명절날의 방문은 겨우 서너번에 불과하였다. 소외된 사람들, 특히 노인들은 명절날 더욱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평일날의 지속적인 방문을 더 중요시하는 개념은 그대로 지니면서 큰 명절날에는 빠짐없이 꼭 할머니들을 방문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어 지난 추수감사절에 양로원에 갔다. 명절날이므로 그 누군가 다녀갔을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한국인들이 다녀간 흔적도, 말씀도 전혀 없었다.

성탄일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새해 첫날 오후에는 김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우리 큰아들, 며느리, 큰손자 내외, 증손주들까지 몽땅 왔다가 지금 갔어” 웃음이 가득한 얼굴과 생기가 넘치는 음성으로 이렇게 알려주시어 마음이 환하여 졌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우리 애들은 어
째서인지 한번 안 와봐. 교회 사람들도 발길을 딱 끊은지가 오래 됐어” 서운함이 가득한 표정과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이걸 어쩌나)자식들의 방문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많은 한인 교회 및 봉사단체에서 이렇게 작게 모인 곳은 방문에서 제외시키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작게 모였으므로 더 많은 것이 필요한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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