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그 누구도 햄릿을 도와주지 않았다’

2008-01-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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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부장대우)

지난 18일 뉴저지 트렌톤 소재 주 환경국 건물을 들어선 기자의 뇌리에 문득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떠올랐다.‘죽느냐 사느냐…그것이 문제로다.’

이날 환경국은 세탁소의 기계와 관련된 환경규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개정안의 내용인즉, 현재 세탁인들 중 80%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퍼크 기계를 오는 2021년까지 바꾸라는 것이다. 만약 세탁소가 주상복합 건물에 위치해 있을 경우, 2009년 7월27일 이후 퍼크 기계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계 교체를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7만~10만달러.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날 환경국을 찾은 150여명의 뉴저지 한인 세탁인들은 이번 개정안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시정을 촉구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죽느냐 사느냐...’를 말한 햄릿의 마음처럼 말이다. 세탁인들의 간절한 호소를 청취한 환경국 관계자들의 표정은 마치 포커판에 앉은 도박사들처럼 읽기가 힘들었지만 조금은 동조 하는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방이 부족했다. 그 한방이란 ‘아메리칸 드림’을 언급하며 눈물까지 보인 세탁인들의 애탄 목소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수퍼 펀치’였다.관료적 운영자들인 환경국 직원들에게 맞서 세탁인들이 이날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관료직 종사자들의 힘이었다. 그들의 입장을 강하고 조리 있게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의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날 공청회의실에서 정치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한인사회와 친분이 있는 고든 존슨 뉴저지주 하원의원도 이날 참석을 약속했음에도 불구,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미국인 정치인들은 그렇다고 치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뉴저지의 한인 정치인들의 모습을
이날 기대하기에는 무리였을까?

뉴저지에는 현재 준 최 에디슨 시장, 제이슨 김 팰팍 시의원, 필립 최 레오니아 시의원, 크리스티 허 리틀폴스 시의원 등 4명의 한인 정치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계 혼혈인 케빈 오툴 뉴저지주 상원의원까지 포함시키면 5명이나 된다.

물론 이들 5명에게 이날 공청회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연락을 받지 못해 공청회가 열렸는지 조차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인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었더라면 트렌톤까지 1시간 운전해서 못 갈 이유도 없지 않았
을까? 더욱이 에디슨의 최 시장은 부모가 한때 세탁소를 경영하지 않았는가?

한인 정치인들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들 5명들 중 한 사람이라도 공청회에 참석했더라면 이 지면을 통해 그를 ‘코리안의 진정한 리더’로서 치켜세워줄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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