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하게 사는 길

2008-01-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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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몇해 전 국립서울정신병원 팀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31%가 평생에 한 번쯤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코틴, 알콜중독을 빼고도 10% 정도가 우울증 등의 질환을 앓는다고 하니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울증 하면 여성을 연상할 정도로 여성쪽이 남자의 3배쯤 많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울증이란 사치스런 병이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긴 후 일어난 현상의 하나이니까. 가사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보릿고개의 가난을 벗어난 여유의 산물이다. 잘 살게 됐다는 것이 만족과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불안과 소외, 회의와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중년의 여성에겐 누구나 이 불청객이 한번쯤은 찾아든다고 하니 예삿일은 아니다. 고운 피부, 날씬한 몸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 잡티가 내려앉은 주름진 얼굴과 살이 쪄 뒤뚱거리는 몸뚱이가 대신 들어앉았으니 어찌 속이 타지 않겠는가. 아침 저녁으로 대하는 영상매체 속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쁜 얼굴 뿐이니 상대적 열등감에 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는 반면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여 부드럽고 상냥한 여성 본연의 특징은 줄어들고 기가 드세지는 현상은 육체의 변화 못지않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케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남편은 바깥 일로 바쁘고, 아이들은 절로 자란 것처럼 따로 놀고, 남편과 자식만을 쳐다보며 살던 자기 인생은 어느 날 초라하게 외톨박이가 되어버린 모습.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그 많은 전자제품의 다양한 기능을 잘 몰라 항상 아이들 손을 거쳐야 하고, 컴퓨터나 심지어 날마다 쓰는 휴대폰의 편리한 성능마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현대판 문맹자 꼴이 되었으니 만사에 자신
이 없어지고 귀찮아진다.

세상이 자기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나와 관계있는 모든 것들이 소원해진다고 느낄 때 나 자신이 깊이 빠져들만한 좋은 거리가 없을 때, 사람들은 바람 부는 들판에 홀로 선 외로움에 젖게 된다. 그래서 도시 속의 콘크리트 건물은 자칫 정신병동이 될 수 있다.나이 들수록 홀로 시간 즐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음악을 듣고 시를 감상하며, 그림을 즐기고 책을 읽는 일은 문화적 삶의 가치를 향유하는 고품질의 생활방식에 속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삶이 풍요로운 건 아니다.

봄철 아지랑이 사이로 돋아나는 먼 산자락의 초록 잎새에서 자연의 정직한 순환을 느껴보고, 여름나절 한가로이 떠도는 뭉게구름으로부터 금방 쏟아지는 소나기를 즐기기도 하고 탈 없이 자라준 아들 딸과 손자 손녀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그리고 재미있는 TV, 비디오에 한동안 빠져들어도 보고, 조금만 애써 배우면 컴퓨터도 벗이 되어줄 것이고... 마음을 달래고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은 재미나게 살만한 곳이 된다.그리고 놓치지 않아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세상에는 ‘좋은 친구만 친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상하 좌우 너무 가리지 말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걸어갈 이웃과 친구를 늘 곁에 둘 일이다.

세계화 시대에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건강하게 행복을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요, 정신병동을 탈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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