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와 아동학대의 상관관계

2008-01-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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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 차일드센터 아시안 클리닉 임상심리치료사)

며칠 전 자신이 돌보던 어린 여아를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서 배심원단으로부터 아동학대 및 살인혐의 유죄평결을 받은 한 한인여성 보모에게 25년~종신형이 선고됐다. 이 한인여성은 2005년 8월 4일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9개월 된 여아를 돌보다 분을 못이겨 뒤통수를 수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해자 자신도 당시 남편과의 사이에서 21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니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이제 갓 태어난 가녀린 갓난아이에게 저질렀는지 많은 한인들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느낀 사건이었다.

엊그제 뉴욕 라마포에서는 아동학대 혐의로 7살짜리 소년의 친모와 데이케어센터 직원이 체포되었다. 가해 부모는 이 어린아이에게 화가 나자 체벌의 방법으로 오븐에 수 차례 밀어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고, 또 데이케어센터 직원은 아이를 돌보면서 목격한 아동 학대를 해당기관에 산고하지 않은 혐의이다. 이 아이가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도망나와 주변 상가에서 발견되었다니 자기 자식을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 뉴욕 한인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아동학대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상담 클리닉에 의뢰되는 아동학대사건의 수가 지난 회계연도에 비해서 30% 가량 증가하였고, 아이 흔들림 증후군에서부터 심각한 매질에 이르기까지 그 강도와 심각성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 한인들이 아동학대 사건으로 체포되는 가장 흔한 유형은 체벌인 경우인데 대개는 훈육 목적의 경한 체벌보다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휘두르는 신체폭력인 경우가 많다.

그동안 아동학대가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아이들을 상담치료해 오면서 늘 느껴오던 사실은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아동학대 예들을 간주해 보더라도 모두 화를 참지 못해, 또는 순간적으로 감정이 욱해서 아이들을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미국 전체적으로도 한 해에 1,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부모나 가까운 친척들의 학대로 인해 사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진 예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조절되지 못한 분노가 폭력의 형태로 표출될 때, 아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상해를 입거나 더 나아가 사망에 이를 위험성이 매우 높다. 특히, 3세 미만의 영아들인 경우에는 약간의 타격을 머리에 가해도 뇌손상을 입힐 수 있으며 그 후유증은 장애 혹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신체적 위해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받고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될 경우 혼란, 배신감, 두려움에서부터 자해, 자살기도,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남용, 행동장애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자신이 피해를 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아동학대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가정폭력이나 폭행, 살인, 상해 사건의 기저에는 분노가 원흉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분노의 감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적 감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에 놓여있다. 많은 사람들은 화가 나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상대방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에 불과하며, 또 그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고 치명적이다.

따라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적절히 수용되는 방법으로 표출해야 한다. 그럴 때 분노의 감정도 적절히 가라앉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정 표출의 부정적 결과를 예방할 수 있다. 특히 자녀를 기르면서 이런 저런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을 때 적절히 조절하고 보다 효과적인 대안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더우기 분노와 연계된 심한 체벌이 양육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것은 가해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된 9개월 된 한인 여아의 부모가 법정에서 “단 한 사람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건”이라고 말했다는데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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