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계천

2008-01-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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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홈아트 갤러리)

북악산을 주(主)산으로 남쪽은 남산(안산), 동쪽은 낙산(룡), 서쪽은 인왕산(호랑이), 좌우로 호랑이와 용이 지키는 그 중심부를 흐르는 물줄기가 청계(맑은 시냇물)이다.

이런 자연적인 천혜의 분지로 이루어진 지형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거기에다 사람이 생활하기에 가장 적합한 기후까지 두루 갖추어진 ‘서울’ 하늘이 내린 가장 복받은 땅이다.600년을 지켜온 고도시 서울을 ‘개혁’이라는 구호로서 노무현 정부는 서울을 외곽지대로 옮기려 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슬기롭게 그것을 잘 지켰다.


근세대에 우리 민족은 청계천과 함께 심한 몸살을 앓았다. 춘원 이광수에게 문학지도를 받은 월북작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을 읽으면 일제시절 청계천 주변에서 일어났던 서민들의 생활을 훤하게 볼 수 있다.
청계천 빨래터에서 빨래줄을 쳐놓고 세를 받으며 생활하는 모습, 여름 장마철에는 홍수로 인해 수입처가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짓는 장면, 그것을 권리금 받고 매매하는 장면, 일본정부가 청계천 덮개공사를 하게 된다면 권리금만 날릴까봐 걱정하는 모습, 이 넓은 청계천을 무슨 수로 모두 덮을 수 있느냐 의문시 하는 주위 사람들... 그 후 해방, 6.25 전쟁, 피난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청계천 주변의 가건물을 혁명이라는 구호 아래 짹 소리 한번 못하고 멀리 외곽지 성남으로 쫓겨났다.

그런 청계천을 덮었다가, 높이 올렸다가 다시 허물어버린 그 모습이 근대 우리 역사를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정치인들의 장난인가? 아니면 청계천의 운명인가?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정치가 무엇인가는 조금 알고 있다. 나쁜 정치는 폭군 스타일의 정치다. 폭군들은 악법과 엄한 형벌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형벌이 무서워 국민들은 겉보기에는 조용하다. 잘 순종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불만을 품고 언제인가 폭발할 위험을 도사리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불안한 정치이다.

반대로, 좋은 정치는 현군 스타일 정치이다. 국민들은 그런 정치 지도자를 사모하며 애찬한다. 그의 이름도 만방에 알려진다. 요즘 말로 인기 ‘짱’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은 정치가 있다. 무엇인가?국민들은 누가 정치를 하는지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정치, 그런 정치가 가장 좋은 정치이다.정치는 정치를 알고있는 전문인에게 맡기고 국민들은 맡은 자기 생업에만 충실하는 그런 국가,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국이며 국민소득도 가장 높은 행복한 나라이다.스위스 또는 북유럽 작은 나라들이다. 미국, 프랑스 같은 나라는 대국이라고 목에 힘은 주지만 스스로가 모순을 안고 있다. 이들 국가 최고지도자 이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왜냐하면 뉴스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조용히 잘 사는 나라, 그 나라 지도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뉴스에 등장하지도 않고 주위 이웃나라와 마찰도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인기 배우가 아니다. 민주주의 방법이란 투표의 고지를 필연적으로 넘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얼굴에 화장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온갖 연기를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연기에 속은 국민의 고통은 어떠했던가?

새로 출범하는 한국 새정부에 바란다.비행기 타고 외국까지 데모하러 나가는 농부가 아니라 자기 고장을 아름답게 가꾸는 농부. 신경질적으로 짜증부리지 않고 웃으며 서울 거리를 드라이브 할 수 있는 운전기사. 툭하면 이마에다 붉은 띠 두르고 데모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일터에서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런 노동자. 교단에 선 선생님들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고 새로운 학문에만 몰두하는 학자로서 만인의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평상시는 가만히 있다가 선거에만 어김없이 가슴 앞에 띠 두르고 시장바닥에 나타나 상인들과 악수하는 모습,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은 청계천을 모델로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일은 앞으로는 삼가했으면 좋겠다.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우리 아이들, 여름에는 물장구 치며 고기 잡고, 겨울에는 썰매 타는 그런 평화로운 청계천의 풍경을 이제 우리 국민들은 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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