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 경제의 ‘빨간 불’

2008-0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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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 해 고유가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으로 몸살을 앓았던 미국 경제가 새해에 들어 더욱 심각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체감경기가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도 “경제의 펀더멘털이 건실하다”는 말만 되풀이 해오던 부시대통령이 지난 주 처음으로 미국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시인하고 의회의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폴슨 재무장관도 가까운 장래에 경제성장이 둔화될텐데 서브프라임 사태를 단번에 해결할 묘책이 없다고 했다.

정부의 공식 시인에 앞서 경제가 이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견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해 4/4분기 미국의 국내 총생산은 0.1%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도 주택시장은 아직 바닥을 친 기미가 없고 국책모기지 융자기관인 패니매의 최고 경영자는 주택가격이 2010년까지 현재보다 12% 가량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지난해 2월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을 33%라고 했는데 지난 달 50%라고 했고 지금은 50% 이상이라면서 이미 침체에 빠졌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같은 투자금융기관은 이보다 앞서 미국 경제가 이
미 침체에 빠졌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미국경제의 침체 가능성을 부인해 온 IMF도 16일 “미국 금융기관들이 모든 손실을 아직 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현재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조심스런 우려를 표시했다. 모두가 미국경제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경기가 침체하면 소비가 둔화되어 기업의 실적이 저조하게 되므로 주가가 하락한다. 월스트릿
에는 이미 지난 해 10월부터 이 현상이 나타나 크리스마스 전에 주가가 잠깐 반등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보통 새해 1월에는 1월 효과라고 하여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상례인데 금년에는 연일 내림세를 보였다. 또 1월의 주가동향은 그 해의 주가동향을 점치는 바로메터로 여겨지므로 금년의 증시에 먹구름이 예상되고 있다.

주택시장의 하락으로 인한 소비 둔화는 기업실적을 저하시켜 주가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실업률을 상승시켜 이미 미국의 실업률이 5%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기침체와는 반대로 지난 해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17년만에 최고치인 4.1%가 상승하여 인플레 현상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경기침체를 금리인하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취약해지면서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금융거래 실적은 지난 2006년에 미국과 유럽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로화의 강세만 고려하더라도 유럽이 미국을 앞질렀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더우기 서브프라임 사태로 부실해진 미국의 투자금융기관에 아시아와 중동의 자본이 유입됨으로써 미국의 금융패권시대는 사실상 끝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미국 경제의 추락으로 인해 곧 대공황이 닥칠 것으로 예고하는 사람도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주가 상승과 유가 100달러, 주택 버블을 예측한 미국의 경제예측가 해리 던트는 오는 2010년까지는 주식시장의 호황이 계속되지만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늦어도 2014년에는 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1929년 대공황 때와는 달리 경제 구조에 안전장치가 많이 마련되어 있고 사회보장 시스템도 있으므로 공황의 피해에 상대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 때 보다도 경제의 국제의존도가 높은 지금 미국에서 공황이 발생한다면 세계적으로 파급될 영향도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가 대공황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지금의 침체현상은 불황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 불황이 금년에 끝날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몇 년간 장기화될 것인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지금 이 불황에 대비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경기가 불황에서 호황으로 넘어가는 회복기에는 공격적인 투자 경영을 해야 하지만 호황에서 불황으로 가는 침체기에는 방어적 투자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경우 불황기에 특히 번창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면 사업확장에 신중해야 한다. 불황기에는 기업 매출이 줄어들게 되는데 한인들이 종사하는 소기업의 경우 매출이 현재보다 30%가 줄어든다면 이익을 낼 수 없는 기업이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확장한 기업은 적자폭을 늘릴 위험이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의 무모한 투자는 기업확장 보다도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가 침체할 경우에도 연금이나 벌어놓은 돈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익을 많이 내지 못하는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고용상태가 안정되어 있지 못한 사람은 생계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적어도 얼마동안 생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 두는 것이 필수적인 방어대책이다. 지금 미국의 경제는 어려운 시기이고 앞으로는 더 어려운 시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미국경제의 신호등을 잘 지켜보면서 대비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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