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하의 날씨면 생각나는 일들

2008-01-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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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Fairfield Trade 대표)

겨울이 되면 북반구의 대륙은 추워지는 일이 당연하다. 뉴욕에서의 추위는 아무리 추워도 문만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피한처가 있다. 역사와 기록을 읽어보면 반세기 전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겪은 추위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고 체감온도는 영하 50도 정도였다니 난방이 잘 된 훈훈한 곳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추위였나 보다.

1950년 11월 승승장구하던 2만여명 미 해병대의 북진은 장진호 부근에서 12만 여명의 중공군에 겹겹이 포위되어 섬멸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 때의 미군들의 장비와 무장은 그들에 비할 바 없이 우수하였지만 빈약한 장비로 무장한 그들이지만 수적으로 우세하여 선발대가 쓰러지면 후발대가 밀고 오고 또 그들이 쓰러지면 또 후속부대가 파도처럼 몰려와 감당하기 어려운 전세였다. 그래서 누가 그랬는지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야전교범이 새로 생겼었나 보다.


그 때 중공군은 미군의 우수한 화력과 해병 항공단의 지원으로 그들의 시체가 전선에 낙엽처럼 쌓여 수 만명이 되었다지만 미군 역시 그 전투에서만 2,500여명이 전사하고 5,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그들이 영하 30도가 밑도는 혹한에서 야전식량 C레이션 깡통마저 얼어붙어 먹지 못하고 중대별, 소대별로 참호 안에서 고향생각하며 졸다가 기습도 받고 동장군의 엄습으로 기진맥진한 육체는 손발이 동상에 걸리고 때로는 백병전을 치루며 한반도에서 죽어간 애처로운 그 병사들을 생각하여 본다.

따끈한 커피라도 야전 컵에 데워 마실 때나, 어쩌다 텐트가 쳐진 임시 막사에서 더운 치킨 스프를 먹을 때 그들은 고향을 떠올렸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 사랑하던 연인을 그리워 하였다.그들은 2차대전 때 참전하였던 역전의 용사도 있었고 갓 입대한 꽃다운 20대의 젊은이가 대부분의 병사였다. 그리고 어느 날 참호 안으로 날아와 작열하는 수류탄에 두개골이 깨지고 내장이 터지는 부상으로 처참하게 죽기도 하였다.

전사자를 처리하는 영현 기록반은 한 군데 모아진 시체들을 후송할 수 없으면 불도저로 땅을 파고 집단 매장을 하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국은 북한땅에서 억울하고 외롭게 죽었던 영혼들을 달래고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그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한다.그들이 한국전쟁에 휩쓸려 산화하지 않았다면 풍요로운 땅, 아메리카에서 아들 딸 손주 보며 얼마나 즐거운 인생을 즐기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맴돈다.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반세기 전 그들이 한국전쟁으로 떠나고 돌아오지 못한 자리를 우리 이민 세대가 대신 차지하고 살고 있다는 미안하고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또한 미군들의 흥남부두 철수작전 때 구출되어 내려온 10만 여 피난민 중에 현재 미국에 정착한 분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국민이라면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게 지켜준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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