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롯가에 한가한 잡담

2008-01-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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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은행인)

미 대통령 선거에 힐러리의 눈물 얘기가 이 동지섣달 설한풍에도 봉평의 메밀꽃 모양 깔렸다. BBK 하나 갖고 죽기살기한 한국 선거판에 비하면 꽤나 로맨틱하지만 악어의 눈물인지 비너스의 그것도 아닌 것을 갖고 요란 떠는 것을 보면 미국 유권자들도 어지간히 할 일 없는 모양이다.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한다”고 했던가. 힐러리야말로 금빛 날개의 소유자,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자는 청량리를 가야 될 사람이다. 중국의 천하절색 왕소군(王昭君)이 길을 가면 구경꾼이 인산인해요, 날아가던 기러기마저 넋이 빠져 날개짓을 않는 바람에 땅에 떨어졌다 해서 이 미인의 별칭이 낙안(落雁, 떨어질 낙, 기러기 안)이다.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창공을 휘젓는 기러기라면 경국지색 왕소군은 만인이 탐내고 예뻐하는
대통령의 옥좌, 그 자리에 혹할 것이 아니라 힐러리는 유권자인 수많은 구경꾼들을 살폈어야 했다. 넓고 멀리 보면 날개를 접을 만큼 집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작가(金별아)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에서 자신이 “학생운동 당시에 배운 것은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을 두려워하는 것이란 점이었다. 대중들은 우매하고 어리석지 않다. 다만 임의적이고 불확정적일 뿐이다. 따라서 최대한 재빨리 그들의 변덕을 눈치채고 변심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쓰고 있다.똑똑한 힐러리라면 이 정도는 용도 폐기 직전의 낡은 매뉴얼이었어야 했다. 무장애, 쾌속질주로 정치권 궤도상에서 순간 좌초가 힐러리 가슴 한 구석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고 오만이나 자만심을 경고하는 붉은 신호등을 간과하면 승리의 여신과 만부득 이별해야만 한다. 힐러리가
일깨워준 여고생 K양 얘기 한 토막.

<항상 전교 수석으로 전교생에게 알려진 K양은 고 2 때 남자친구에 배신당했을 때도 왼눈 하나 깜짝 안해서 교내에 화제가 됐었는데 졸업 때는 수석을 놓쳤다고 통곡하는 바람에 학교 전체를 놀라게 했는데 자신의 노력문제나 실수를 탓하는 회한의 눈물이 아니고 오직 수석을 뺏겼다는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해 하는 것같아 보기에 안스러웠다.>

K양 자리에 힐러리를 대입시키면 두 여인은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필자는 과문한 탓에 백악관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전세계가 들썩거렸을 때 힐러리가 눈물 흘렸다는 기사는 접해보지 못해서 참 독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큰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 ‘유약하게시리 웬 눈물?’ 항변할 수 있겠지만 엄마요, 아내요,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원통하고 분하고 부끄럽고 미울 때 상대방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눈물 쏟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짐승은 이성 이전에 본능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은 감성과 이성이 상충될 때 만물의 영장이기에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나 지배 당한 감성이 조용히 승복하는 것이 아니고 눈물로서 저향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진정한 이성적 인격체이지 극한상황에서도 이성 찾고, 체면 찾고, 이해관계 따지는 사람은 냉혈동물이고 상종할 수 없는 인간이다.

한인사회에서도 힐러리를 돕고 있기에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큰 어려움 없이 고속행진한 힐러리가 벼락치듯 인기 상승하는 버락 오바마에 예선 전투에서 한 번 지고 흘린 눈물은 야누스의 눈에 바른 침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때를 놓친 눈물이다. 그 눈물은 옛날 백악관에서 흘렸어야 했다. 위선이나 오만으로 오염된 타산적 이성은 눈물 한 방울로 데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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