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2008-01-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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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철학적 진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영구불변의 진리이다. 구체적 예로서, 우주 자체를 포함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는 그것의 탄생일이 있고 또 각기의 수명을 살다가 끝내는 죽는(소멸)다는 것이다. 다만 만물간의 수명(존재)의 시간적 길이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다가 죽는 반면, 우리의 생명줄인 태양의 기대치 수명은 85억년이나 되며 벌써 탄생한지 40억년이 되었다니 45억년 후면 숨을 거두고 죽게(소멸)되어 있다는 것이다.‘메가 밀리언 로또’의 당첨 확률이 1억6,000만 분의 1이라고 했던가. 그것을 좀 더 실감있게 풀이해 보면 평균 40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40만 권이나 장서하고 있는 도서관에 앉아 어떤 사람이 읽고있는 책이 무슨 책이며, 지금 몇 페이지를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아맞추는 확률과도 같다. 언뜻 보기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확률이 제로가 아닌 이상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을 생물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그것의 수백 내지는 수 천배가 더 희박한 확률을 제치고 태어난다. 신의 간섭이 없고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갈은 확률 속에서 선택되어 태어나는 인간의 생명이란 것을 생각하면 지구상에 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축포를 쏘아올리고 팡파래를 울려야 마땅하다. 그래서 흔히들 한 생명의 우즈와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존귀하다고들 하지 않는가.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는 그 종목에서는 세계의 65억 인구 중에서 가장 잘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고 금방,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올림픽의 수십 내지 수 백배의 경쟁을 물리치고 태어났다고 우쭐댈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씨앗 중에서 가장 우수해서 태어났다기 보다는 로또 당첨자와 같이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로또 당첨자에게 로또 당첨이 축복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저주가 됐듯이 인간의 탄생도 모든 인생에게 축복인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신체 부자유자들은 제외하고라도 정상인이라도 신체조건이나 지능이 각각 다르게 태어나는 것은 물론 어느 나라와 사회에서, 어느 가정과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여정의 ‘안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들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는 말은 법이 아니라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서 황금마차에 올라앉아 생의 여정을 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맨발로 가시밭길 걸어가듯 고되고 고통스런 삶의 여정을 터벅거리면서 가는 삶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오히려 살아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죽을 때 평등하게 된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야하는 자연의 섭리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실체가 아닌 시간은 원래 시작도 없고, 그래서 수명도 없고 또한 끝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단위의 ‘시간’이나 ‘년’이나 ‘초’라는 단위는 영겁에서 영겁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길이의 시간을 인간의 편의에 의해 재단된 시간의 토막일 뿐이다.

이제 새 해를 맞으면서 고작 80년 남짓 사는 인생을 숫자로 가감해 보며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해 보는 계절이 되었다. 자유당 시절의 진보당을 이끌었던 조봉암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날, 간밤에 내린 비로 아직도 땅으로 스며들지 않은 빗물 고인 자국에 이르자 한 발자국도 되지 않은 그 빗자국을 건너가지 않고 돌아서 갔다고 전해진다. 1초를 더 살기 위해서다.흔히들 사람들은 한 것 없이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고 못내 아쉬워 한다. 이제 막 시작된 2008년이 다 지나가면 조봉암이 원했던 1초의 3,000만배 이상이나 되는 엄청난 시간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 사실만 생각해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왜냐하면 시간이란 것은 항상 가능성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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