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함께 사는 지혜

2008-01-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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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한인교회가 미국인 백인 교회 건물을 함께 쓰며 서로 만족스럽게 지낸 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겠다. 처음엔 동양인을 받아들이는 데에 대한 반대자가 많았으나 한인교회가 경제적인 도움이 된다는 이유와 교단의 적극적인 권유로 간신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는 미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회의도 많이 거치고 건물 사용에 대한 내규나 위원회도 만들었는데 이런 외형적인 울타리가 인종차별주의 앞에서 한낱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두꺼운 벽은 ‘진실한 사랑’으로서만 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나는 미국 교인들과 친구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의 교인들에게도 “미국교회와 공존하는 수단과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진짜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과 친구가 되라”고 계속 강조하며 그런 기회들을 만들어 주었다.
불과 2년 후 서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눈에서 의심도 두려움도 미움도 사라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사랑의 순환운동’이라고 부른다. ‘알고-이해하고-사랑하는 사이클’이 돌기 시작하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더 진실하게 사랑하게 된다. 인종문제 뿐이겠는가! 부부도, 친구도, 교회도, 회사도 ‘사랑의 순환운동’으로 천국이 될 수 있다. 함께 사는 지혜는 ‘절대로 절대로’ 진실한 사랑만이 그 비결이며 ‘결코 결코’ 돈 거래나 문서 작성에 있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만을 위한 민권운동가였다면 그의 생일이 국경일이 되지도 않고 노벨평화상 대상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연설을 맡은 킹 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백인들을 불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형제이다. 백인의 운명과 흑인의 운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백인의 자유와 흑인의 자유도 서로 맞물려 있다. 어느 한 쪽도 혼자 걸어갈 수는 없다. 흑인들이 자유를 갈망한다고 해서 증오의 잔으로 자유를 마실 수는 없다”미국이 소위 ‘위대한 사회’를 건설하려면 그 첫 과제가 인종차별주의(racism)를 극복하는 일이다. 계급차별주의(classism)와 성차별주의(sexism)를 합하여 ‘미국 악의 3대 과제’로 꼽았으나 둘은 어느 정도 극복해 가고 있고 최후의 장벽은 인종차별주의와의 싸움이다.

이번 대선에는 흑인도 여성도, 몰몬 교도도 목사도 출마하고 있다. 그들 모두의 공통된 주장은 ‘변화’이다. 나름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목표를 향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 대선의 결과도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승리라고 말한다. 문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화를 외치지 않은 정치는 없었다는 것이다. 왜 구호와 주장처럼 변화가 이룩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오직 한 마디 ‘부패’ 때문이었다. 사리사욕을 취하기 시작하면 모든 꿈은 공염불로, 모든 좋은 이념은 거품으로 돌아간다.

키신저가 국무장관 때 유엔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국은 세계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고 세계를 지배할 수도 없다. 그와 같이 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거나 남을 지배할 수는 없다” 이제는 지구촌이 서로 어울려 살고 도우며 살고 힘을 모아 평화를 이룩할 때이다. 이 방향을 방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이 현대의 악이다. 나라는 나라대로, 세계는 세계대로 평화롭게 함께 사는 분위기를 만들어 오염과 질병과 가뭄과 홍수와 싸우는 것이 아마도 오늘날의 천국 건설일 것이다.

한국인은 해 묵은 고질병에서 정말 해방될 수 없는 것일까? 지방으로 갈라지고, 계열따라 당을 짓고, 이념 따라 벽을 쌓고, 이익 따라 뭉치고, 하찮은 일로 미워하는 이 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는 정말 없단 말인가? 왜 그렇게 물고 찢을까! 이런 것은 제도와 조직을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교육은 기술 전수보다도 사람을 만들어야 하고, 종교는 울타리 안에서의 독백보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어 ‘하나 됨’의 비전을 보여야 한다.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다인종 복합문화 속에 살게된 것을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한인교회가 미국교회 건물을 함께 쓰는 것을 궁색한 임시변통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인류를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민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한국에도 70만의 외국인이 와서 산다는데 서로를 이해하는 지구촌 가족을 몸으로 느끼며 서로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는 한 배에 탔다. 흥해도 망해도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을 배우라. 많은 인종과 문화가 있어도 대화합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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