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도리

2008-01-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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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숙(아스토리아)

한 외국인 할머니 ‘모니카’가 거주하고 있는 어느 양로원의 오락실에서 전혀 뜻밖에도 휠체어에 앉아있는 한 동양인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분명히 한국인’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자마자 다만 동족이라는 연유와 외국인들 뿐인 양로원이라는 이유로 인해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구, 이거 한국사람이구만. 한국사람이 여기 웬일이여” 무척 놀라워 하시다가 내 손을 덥썩 잡으면서 아주 반가워 하셨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말씀을 연달아 하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과거지사로부터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영어를 전혀 못 하시므로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은 물론 몸이 몹시 아프게 되어도 누구에게 알릴 수가 없으므로 입술을 깨물며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고 견딜 수 밖에 없고, 때로는 죽을 것 같이 심하게 아파 참고 있던 신음소리가 당신 자신도 모르게 고통의 비명소리로 변하여 마구 터져나오게 되면 간호원이 오고 한참 후에야 한국어 통역관이 온다고 하신다.


이미 몹시 아파져 있었던 나의 가슴 속이 더욱 심하게 아파지므로 눈물을 억제하고 있었던 힘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할머니는 다행히도 움직이는 한쪽 팔의 손으로 꼬옥 잡은 나의 손을 한시간 반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놓지 않으신 채 말씀을 그만두실 기미 조차도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아주 죄스러운 마음으로 “이제 제가 가봐야 되는데 어쩌지요” 이렇게 말씀드린 후에야 겨우 놓아주신 손으로 김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한국사람이 딱 한 사람 더 계시다는 방으로 향하였다.김 할머니가 매일마다 몇 번씩 찾아가서 병세가 호전되었는가 살펴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답변조차 못할 정도로 몹시 편찮으시다는 강 할머니는 코와 입, 그리고 팔과 손등에 호스들이 연결된 채 고통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땀을 몹시 흘리면서 침대에 누워 홀로 계셨다.

이 세상의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고독과 고통의 실상들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는 두 할머니 앞에서 나의 심정은 극도의 참담함으로 경직되어 그 어떠한 위로의 말 한마디, 눈물조차도 나올 수가 없었고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김 할머니가 종이수건으로 강 할머니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시고 땀에 흠뻑 젖은채 흩어진 머리결도 다듬어 주시면서 “아이구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할텐데…” 하실 때에야 경직되었던 심정이 풀리면서 절반이나 마비가 된 팔순이 넘은 몸으로 남의 고통의 진땀을 닦아주고 가슴을 다둑다둑거려 주는 김 할머니의 모습이 아주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으로 반영되었다. 앞
으로 모니카 방문은 이제 모니카와 한국 할머니들 방문으로 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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