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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2024-11-18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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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이 바흠에게 말했다. “나는 하루치로 땅을 팝니다. 출발점을 떠나 하루 동안 당신의 발로 밟고 돌아 온 땅이 바로 당신의 땅이 됩니다. 하루 당 가격은 1천 루불입니다.” 바흠은 100만 평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렸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가고 있었지만 바흠은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간 후에 돌아가자.” 라고 중얼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갔다. 어느순간 바흠은 마지막 힘을 다해 돌아가야 할 순간임을 알아챘다.

바흠은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내 달려 간신히 출발점에 도착했다. 그 순간이다. 바흠은 가슴의 통증을 느꼈고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촌장은 쓰러진 바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의 ‘단편 우화집’ 중에서‘)


‘좀더 빠르게, 좀더 높게, 좀더 강하게’ 라는 올림픽 표어에 깊이 감동을 받아 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고도성장했다. 세계 8위의 통상대국이 되었다.하지만 높은 경제 성장 목표 달성과 함께 허영심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덕의 힘이 우리에게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 세월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교 추락사건 같은 구조적 재난이 발생했고 온 나라가 도덕적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도대체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성장과 성공의 목적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걷잡을 수 없는 허영심의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일까. 파스칼은 대답한다. “허영심의 매력은 너무나도 강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이 명예와 결부되어 있으며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을 갖고 싶어 한다. 그때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허영에 집착한다.” 파스칼은 허영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집착하는 인간 상태를 ‘인간 최대의 비참’이라고 명명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뱃길은 쉽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후 하산하는 산행(山行) 만큼 위험했다. 오디세우스가 직면한 위험은 험한 풍랑도 아니고 해적의 위험도 아니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세이렌의 유혹의 노래다. 뱃사람치고 세이렌의 유혹의 노래를 듣고 바다에 뛰어내리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세이렌의 유혹의 노래가 들려오는 협곡을 지날 때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돛대에 몸을 단단히 묶어라. 밀랍으로 귀를 단단히 틀어막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라.” 오디세우스는 강인한 절제의 힘으로 세이렌의 치열한 유혹을 돌파했다. 무사히 고향 땅을 밟아 영웅이 되었다.

동면하는 곰에게 좋아 하는 사슴 살을 코앞에 디밀어 보라. 눈길하나 주지 않는다. 유혹받지 않는다. 동면하는 곰의 절제력은 놀랍다. 동면하는 곰은 다른 동물보다 몇 배나 오래 산다.

허영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쓰러진 바흠 앞에서 촌장은 물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했다. “충동을 조절하지 않으면 충동이 당신의 행동과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성경은 선언한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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