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인들 ‘엑소더스’ 왜] ‘탈미국’ 행렬… 해외 이주 사상 최대

2026-03-0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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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비·삶의 질 등 이유
▶ 유럽·아시아 등으로 이동

▶ 트럼프 2기 이후 급증세
▶ ‘도널드 대시’로 불리기도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던 미국이 오히려 시민들이 떠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 보도했다. 최근 미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며 새로운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WSJ은 전했다.

지난해 미국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은 ‘순유출’ 현상을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대규모 불법 이민 단속과 비자 제한 정책의 성과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미국 시민들 자체가 해외로 대거 이동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공식적으로 미국 시민의 해외 이주 규모를 집계하는 통계는 없지만, 50개국 이상의 거주 허가·주택 구입·유학생 등록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유학, 원격근무, 은퇴 등의 이유로 해외에 정착하고 있다. 일부 미국인에게는 이제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을 떠나는 것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미국인들이 아파트를 대거 매입하면서 도시 곳곳에서 영어가 더 많이 들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그랜드 캐널 독 지역에서는 주민 15명 중 1명이 미국 태생인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발리, 콜롬비아, 태국 등에서는 달러를 벌며 원격근무를 하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집값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현지 주민들의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해외 대학에 진학한 미국 학생도 10만 명을 넘어섰다. 멕시코 국경 인근에는 미국 노인들을 위한 저렴한 요양시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은퇴자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주 컨설팅 회사 ‘엑스패치’가 지난달 개최한 온라인 설명회에는 알바니아 이주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약 400명의 미국인이 참가했다. 이 회사의 창립자인 젠 바넷은 미국인 해외 이주의 배경으로 원격근무 확산, 생활비 상승, 정치적 갈등 등을 꼽는다. 일부에서는 이 현상을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증가했다는 의미에서 ‘도널드 대시(Donald Dash)’라고 부르기도 한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순인구 유출 규모는 약 15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약 67만 5,000 명이 추방되고 220만 명이 자진 출국한 것으로 국토안보부는 집계했다. 또한 15개국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5년에 최소 18만 명의 미국인이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은 400만~9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국무부는 2022년 기준 멕시코에만 약 160만 명의 미국인이 거주한다고 추산했다.

캐나다에는 25만 명 이상, 영국에는 32만 5,000 명 이상이 살고 있으며 유럽 전체에는 15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럽연합 27개국 대부분에서 미국인의 이주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미국인 거주자가 500% 이상 증가했고, 2024년 한 해에만 36% 늘었다.

최근 이주하는 미국인들의 특징은 단순한 여행이나 은퇴가 아니라 가족 단위 정착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미국인 크리스 포드는 “미국보다 급여는 낮을 수 있지만 유럽의 삶의 질이 더 높다”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총기 난사 대비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리스본으로 이주한 한 미국인 가족은 LA에 있던 초등학교에서 두 번째 총기 위협 사건이 발생한 뒤 이주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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