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산책의 즐거움

2024-08-28 (수) 윤관호 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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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의 매일같이 산책을 하게 된 것은 2020년 3월 이후이다. 이전에도 간혹 산책을 했으나 세계적 전염병인 코로나 19가 창궐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아침에 1시간 정도 산책을 해오고 있다. 아침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다 걷지 않아 몸의 일부분이 불편할 때도 걷고 나면 나았다. 산책을 하면 육체적 건강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햇빛 찬란한 날, 구름 덮인 날, 비오는 날, 안개 자욱한 날, 눈 내리는 날 한 발, 한 발 걸으며 자연을 관찰한다. 산책길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연못을 지난다. 이 연못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노닐기도 하고 새끼 두 마리가 늘어나 네 마리가 즐겁게 지내기도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도 언덕에 오르면 세상 걱정이 사라진다. 언덕 위 모퉁이에 수선화 무더기가 있기에 나는 이 언덕을 수선화 언덕이라 부른다. 이른 봄에 피는 이름 모르는 풀꽃들을 만나 가슴 설레이기도 한다.

개나리, 장미, 튤립, 연산홍 꽃들을 따라 웃기도 한다. 겨울에 핀 매화, 봄에 핀 수선화, 벚꽃들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기도 했다. 여름에는 무궁화 꽃을 보며 고국생각과 향수에 젖는다. 나무 위를 재빠르게 오르고 내리는 다람쥐도, 한가하게 다니는 길고양이도 사랑스럽다.


네 다리로 나무를 기어오르는 너구리의 모습을 처음으로 한번 보았다.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숲도 본다. 미국 국기가 게양된 운동장 잔디밭에 떼로 앉아서 풀을 뜯고 날아가는 캐나다 구스들을 보니 시원하다. 연말에 기어가는 꼬마 달팽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고 감탄한 적도 있다. 마치 내일 새해 해돋이 광경을 보러 일찌감치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유연한 생명력을 지닌 갈대밭 앞도 지난다. 리틀넥 만(Little Neck Bay)과 저 너머 바다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물위에서 자맥질하는 청둥오리와 창공을 나는 갈매기를 보면 활력이 샘솟는 듯 하다.

백조 10마리가 편대를 이루어 당당하게 바다를 진행해 나가는 희귀한 광경을 보기도 했다. 이날 따라 휴대 전화사진기를 집에서 갖고 나오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멀리 뜨록스넥 다리(Throgs Neck Bridge)도 바라본다. 크로스 아일랜드 팍 웨이(Cross Island Parkway)를 달리는 차량들과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인류의 문명은 이동수단의 발달과 함께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책길에 마주친 사람이 밝게 웃으며 가볍게 인사하면 나도 응답하며 명랑해진다. 모르는 사람들이 먼저 웃고 가볍게 인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상대방이 웃으며 인사하면 나도 미소 지으며 인사하게 된다. 웃으면 밝은 기운이 전파된다.
핼로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지나치는 여러 집 앞에 설치된 장식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와 대문호이자 철학자인 괴테는 일정한 시간이면 산책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는 괴테, 헤겔,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을 하며 사색을 하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
나도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자연과 교감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 생명을 지닌 동물들도 식물들도 모두 아름답다. 산책을 하고 나면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활기차게 살아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믿음과 용기로 헤쳐 내리라. 산책은 육체는 물론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윤관호 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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