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

2023-06-30 (금)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정신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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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강했던 분이, 흔치는 않지만, 내일 갑작스럽게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의 불안이고 괴로움이다. 오늘 건강하니까 내일도 건강하겠지 하고 마음 툭 놓고 생활한다.

지난 5월의 모임에서 만났을 때 최철용 선생은 건강했었다. 건강했었기에 6월 모임에 만나자고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6월 모임에 최철용 선생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최철용 선생은 서울대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미국에 와서 리버티 은행 이사였었다. 뉴욕 서울대 동창회 회장을 지내셨다. 여러 단체에 가입해서 뉴욕한인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었다.


이삼 주 전, 항상 일하던 채소밭에서 최선생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얼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세상을 떠났다. 최선생은 평소에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직장에 나가기 전에 뒷마당의 채소 텃밭에 물을 주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후에도 채소 텃밭을 가꾸었다.

최선생은 친구가 많았다. 친구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여름이면, 친구들에게 자기 집에 와서 고추, 오이, 파 등을 따가라고 했다. 상추, 배추, 무 등을 뽑아가라고 전화했다. 친구들은 매년 와서 채소를 따가고 뽑아갔다. 친구들에게 주는 재미로 농사를 짓곤 했었다.

최선생은 베이글 가게를 경영했다. 친구들을 한두 명씩 가게로 데려온다. 점심도 대접하고, 떠날 때는 베이글도 한 바구니를 집어준다. 최선생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최선생은 베이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을 얼마나 잘 대해주었는지, 점원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 20~30년을 함께 일했다.

의식을 잃기 일주일 전에, 최선생은 베이글 가게를 팔았다고 했다. 죽기 바로 전에 가게를 팔았다는 것! 자기의 죽음을, 잠재의식적으로, 미리 알았다는 말일까. 알았겠지! 뭔가 신기(神氣)하다.

최선생은 그 바쁜 생활에도 낚시를 무척 좋아했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었을 때, 물고기를 끌어당기는 촉감이 엄청 좋다는 말을 나는 여러 번 들었었다.

최선생은 낚시의 도사(道士)였다. 광어를 잡는 것이 아니라, 광어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일부러 잡혀준 것 같았다. 최선생은 잡은 광어를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다.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낚시를 즐겼다.

한 달에 한 번 씩 만났던 최선생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으니 슬프다. 최선생은 가톨릭 신자이기에, 지금은 천국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계실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정신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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