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하나님 알기
2021-12-02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우리는 창조이래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고 축척해 왔던 모든 지식, 정보량보다 더욱 많은 양의 정보를 지난 수년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인류에 의해 소유된 지식량의 총계가 1900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배가 되었고 이후 1970 년대까지는 10년 주기로 배가 되었으며 그때로부터는 5년 기간으로 지식량이 배가되어 오고 있다. 이런 추세로라면 이제 곧 지식량이 70일 마다 배가 될 것이다는 예측도 나온다. 예전에는 힘의 근원은 단연 군사력이었다. 로마제국은 최강의 군사력으로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 군림했고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앞세워 많은 식민지 국가들을 세웠다. 특히 대영제국은 전 세계 육지의 4분의 일을 지배하며 해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고 징키스칸이 세운 몽골제국도 육지의 5분의 일에 달하는 지역을 탁월한 기마군사력으로 정복했다. 그러다가 힘의 기초가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바뀌었다. 무력에서 재력으로 재편된 것이다. 정치가및 지도자들은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기반으로 나라와 사회를 통치하려 했다. 백성들을 풍요롭게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지도자의 과제이자 덕목이 되었다. 헌데 오늘날은 정보화 시대이다. 남들보다 더 창의적이며 기발한 정보와 지식을 소유해야만 성공할 수 있고 만족한 삶을 누린다. 군사력이 힘의 기반이었던 17 세 초 프란시스 베이컨이 ‘ 아는 것이 곧 힘이다’ 라고 했던 말이 오늘 시대에 실현되었다. 짧은 시간 내에 무진장의 지식을 증진시킨 인류의 능력과 지혜가 참으로 대단하고 놀랍다. 인간능력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인간만세 소리가 어느정도 타당한듯 들린다. 성경도 지식량의 증가에 대해서 언급한다. 다니엘 12장 4절에 “마지막 떄에.. 많은 사람이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했다.
헌데 지식과 배움이 늘어나면 그만큼 인생과 삶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할 터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그 반대현상도 나타나곤 한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보다는 과도하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지식과 정보에 쉽게 유혹받고 빠지고 중독되어 간다. 또한 끊임없이 쏱아지는 정보와 지식에 마음을 빼앗긴채 그것들을 삶의 절대요소로 신뢰하고 신봉하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정보 검색은 수시로 하면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묵상과 기도의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사색의 시간은 현저히 줄어 든다는 것이다. 요즘 스마트 폰은 친절하게도 일주간 자신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알려준다. 나는 스마트폰 사용량을 볼 때마다 전화기 사용을 조금씩 줄여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는 시간과 비용을 정보를 얻고 즐기기 위해 스마트 폰에 지불하고 있다.
물론 우리들에게는 지식이 필요하다. 알아야 면장도 할수 있고 배워야 세상에 대처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많은 돈과 비용,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곤 한다. 헌데 우리들에게 세상 지식 못지않게, 아니 그것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시 46:10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했다. 이는 세상 정보습득보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것이 참된 힘이고 지혜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그분께 온 마음과 시간을 투자해 집중해야 한다. 기독자들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생각하는 경건의 시간을 일상 중에 꼭 가져야 한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가 때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피난처이며 환난 시의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과도한 지식량으로 혼란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주님과의 교제는 심령과 육신의 평안과 안녕, 확신을 심어준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오감을 하나님께로 집중할 때 세미한 그분 음성이 들리며 우리를 향하신 그분 뜻이 깨달아 진다. 하나님과의 교제 시 인생의 심오한 지혜가 생기고 통찰력과 혜안도 생긴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요즘 세상이 점점 떠들석하고 불확실하고 소요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주님께 나아가 주님이 하나님 되심을 깨우치고 확신하시길 기원한다.
<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