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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라고?

2021-12-02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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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불교매체 편집자가 말하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라고?

올해 제31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대상 수상작으로 뽑힌 김용암 작가의 조각작품 ‘49일간의 행복’이다. 이는 49일 간의 정진 끝에 위없는 큰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을, 색조가 다른 두 가지 석재를 활용해 표현한 작품이다.

살불살조(殺佛殺祖).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는 뜻이다. 이 말이 나온 실제상황에 맞춰 해석하면,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한 이는 당나라 말기 임제 의현 스님이라 전해진다. 그저 그런 스님이 아니다. 중국 선불교 5대 종파(선종5가) 중 하나인 임제종 창시자다. 한국 선불교에서도 정통법맥으로 숭앙받는 스님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참뜻은 무엇일까. 살벌한 말에 담긴 심오한 뜻은 대체...

이 말을 화두로 삼고 참구를 거듭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스님도 있다.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이 말을 제멋대로 주워담아 스님 등의 가르침에 딴죽을 걸거나 자신의 못난 언행을 정당화하는 거름으로 써먹으려 하는 고약한 이들 또한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기자는 후자와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감히 자신한다. 그렇다고 단 몇시간이라도 이게 뭘까 골똘히 생각해본 적도 없다. 우선 불심이 얕은데다 튼실하지 못한 탓이 크다. 굳이 한 술 더 뜨자면, 문제를 접하기 무섭게 답까지 알아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진 탓도 있다. 책을 펼쳐도 컴퓨터를 열어도 살불살조 하면 겉뜻은 저러하나 속뜻은 이러하다(주로, 부처나 조사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는 뜻풀이가 같이 보이고 곧장 들리니 이른바 학습동기, 즉 절실하게 생각하는 (나아가 절실하게 체험하는) 계기가 선뜻 잡히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핑계다. 절실함 부족을 가리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살림을 늘리는 지름길은 절실함이다. 학식도 재력도 권세도 아니다. 절실함의 마력(?)에 대하여는 새크라멘토 영화사 주지 동진 스님이 최근에 든 좋은 예시가 있다. 제대로 된 산중 사찰의 경우, 저 아래 입구부터 어디 어디 거쳐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이며 계단이며 하나하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해 배치돼 있다, 계단을 어느 정도 오르면 뭐가 보이고 하는 것까지 다, 그런 걸 따라 ‘힘들게 공들여’ 올라가서 부처님 전에 절을 드리고나면 “차나 한잔 하고 가시게” 이 말만 들어도 귀한 법문이 된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문득, 성철 큰스님이 생전에 삼천배 숙제를 기어이 다 하고서 한말씀 들으러 찾아온 불자들에게, 삼천배나 했으니 얼마나 귀한 말씀을 주실까 기대가 무진 컸을 불자들에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거짓말하지 말그래이” 이 말밖에 안했음에도, 감동어린 소감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다시 살불살조 이야기다. 다분히 반어적 중의적 은유적 불교표현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불교권 우리’도 이 격렬하고 살벌한 표현을 두고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데, 자라난 문화와 토양이 판이한 미국인 불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의 대표적 불교전문매체 라이언스 로어(Lion’s Roar)가 최근 “길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그를 죽이라고?(If You Meet The Buddha On The Road, Kill Him?)”라는 제목의 긴 글을 실었다. 기고자는 이 매체의 크리스 파체코 편집자다.

“...장면은 정녕 코믹했을 것이다. 스승의 충격적 주장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제자들 눈은 휘둥그래지고 턱은 빠지고 표정은 어리둥절...”

임제 선사가 살불살조를 선언하자 당혹감에 휩싸였을 제자들을 상상하며 글을 시작한 파체코 편집자는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담을 공유한 뒤 “...우리가 배운 것에 집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얻었다고 확신하기 쉬워지고 그것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단단히 붙들기 시작한다...스승과 가르침은 둘 다 유용하고 어느 정도 활용해야 하지만, 결국 둘 다 버려야 한다...부처를 죽인다는 건 우리의 개념화를 죽이고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믿음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부처를 죽일 때 우리는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파체코 편집자의 글 전문은 라이언스 로어 홈페이지(www.lionsroar.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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