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95) 제43대 George Walker Bush 대통령(1)

2020-02-24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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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으로 부자가 봉직했던 경우는 지금까지 두번 있었는데 첫번째로는 제2대 John Adams 대통령과 제6대 John Quincy Adams 대통령 부자이며 두번째로는 제41대 George Herbert Walker Bush 대통령과 제43대 George Walker Bush 대통령 부자이다. 제43대는 제41대와 구분하기 위하여 “George W,” “Bush Jr.,” Bush 43” 등으로도 불리운다.
Bush 43은 Bush 41에 비하여 국제정세가 훨씬 더 복잡하였을 때의 대통령으로써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들도 더 많았었는데 대통령으로써의 평가는 아주 낮게 받았던 인물로 일부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중 에는 Bush 43을 미국 대통령 43명중 39번째로 열등한 대통령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필자는 종국적으로 탄핵재판까지 받게 되었던 Clinton 의 “성추문”과 기타의 “실정” 의 여파가 Bush 43이 Clinton 의 부통령이었던 Al Gore 를 물리치고 당선되는데 도움이 되었었다고 생각할수 있는반면 Bush 43 의 우파보수로 쏠린 정치적 “실정”들 때문에 진보적인 “흑인” Barack Obama 초선 상원의원이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수 있었던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도 된다.

2000년의 대통령선거에서 Bush 43 은 전국 국민의 투표에서는 Al Gore 에게 많은 표수차로 지고 있었는데 그가 극소수의 표차로 이겼으나 아주 적은 표수차이 때문에 법률상 재검표를 하게 되어있던 Florida 의 투표를 공화당원 이었던 Florida 주의 Secretary of State 의 반대와 보수쪽이 과반수 이었던 미국 연방대법원의 “부당한” 재검표 불허가 판결로 Florida 주의 선거인단 표들을 Bush 43 에게 “도난”을 당하여 Bush 43 이 271 대 266 로 신승하였었던 것이다.


투표 재검표로 인하여 초래될 국가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재검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었다는 Al Gore 의 “결단”을 비난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었다.

자신의 동생인 전 Florida 주지사 Jeb Bush 가 Trump 와 대통령후보 공천경쟁을 했던 것도 이유는 되었겠지만 Bush 43 은 2016년의 대통령후보 공천대회에 참석하지 않았었고 본선거에서 Donald J. Trump 공화당 대통령후보에게 투표를 하지 않았으며 Trump 의 Presidency 가 “진짜의 공화당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I am afraid that I am the last Republican President!” 라고 우려를 표시했다는 얘기도 있다.

Bush 43 은 Bush 41 이 제2차 세계대전중에 최연소 항공모함 전투기 조종사로써 참전한후 2년반만에 학사학위를 마친 Yale 대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1946년에 태어났다. Bush 43 도 Yale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학사를 받았느데 University of Texas 의 법과대학의 입학신청에서 낙방한후 Harvard 대학교에서 M.B.A. 를 받았다.

그는 미국대통령중 유일한 M.B.A. 학위 소유자라고 한다. 그의 조부는 투자금융가로써 Connecticut 주의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Prescott Bush 이다.

Bush 43 은 독신시절에 과음을 했던적이 있었다고 하며 음주를 하고 운전을 하다가 벌금 ticket 를 받은적도 있고 D.W.I.로 운전면허가 잠시 취소 되었던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학교 교사이며 librarian 이었던 부인 Laura Welch” 와 1977년에 결혼을 한후 음주를 삼가하다가 1986년에 아주 금주를 하였었다고 한다.

Bush 43 은 1978년 (32세)에 Texas 에서 연방하원 의원으로 출마하였다가 낙선되었었다. 그는 1977년에 Texas 에서 Arbusto Energy 라는 석유탐사회사를 설립하였다가 얼마후에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한후에 회장이 되었었으나 석유가격이 하락하자 HKN, Inc. 와 합작한후 그회사의 이사가 되었었다

그가 얼마후에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주식을 처분하자 그가 “Insider Information” 을 가지고 부당이득을 취했을 것이라는 혐의로 SEC 의 조사를 받았으나 위법이 없었다는 결정을 받았었다.

Bush 43 은 사업투자에 대한 안목이 있었던듯 하다. 그는 1989년에 몇명의 투자자들과 합자로 Texas Rangers 라는 야구단의 controlling interest 를 8,900 만불에 구입하였다. 그는 구당의 Managing General Partner 가 된후 5년동안 매번 경기에 일반 관중석에 앉아서 참석한후 구단을 감독하고 현장 지휘도 하였었다. 구단을 우수한 야구단으로 성장시킨후 1998년에 팔았는데 Bush 는 원래 80만불을 투자했다가 1,500 만불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만하면 사업을 보는 능력, 기업을 단단하게 운영하는 능력등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Bush 43은 1988년에 부친의 대통령선거운동을 위하여 Washington 으로 옮겨와서 언론과의 접촉을 담당하였으며 전국으로 선거운동도 다녔었다. 1991년에는 Bush 41 이 Bush 43을 1992년의 대통령 재출마 준비위원 7명중 한명으로 임명하였었고 1991년말에 대통령 비서실장 John Sununu 를 해임할때에 Bush 43 이 부친 대신에 통보하는등 부친의 측근 보좌원으로 일하였었다.


Bush 43 은 1994년의 Texas 주지사 선거에 출마할것을 발표하였는데 같은 해에 그의 동생 Jeb Bush 도 Florida 주지사로 출마 하여서 결국에 두 형제가 같이 주지사들에 당선 되었었다.

그는 무난하게 공화당의 주지사 공천을 받은후에Welfare 제도 개혁, Tort (민법의 일부) 개정, 범죄강력단속, 교육개선 등등의 선거공약을 하며 당시 인기가 있었던 민주당의 Ann Richards 주지사에게 도전하였다. Bush 는 주민들이 총기를 은익한채로 휴대할수있는 법에 서명하겠다고 했으며 Bush 측에서 은연중에 Richards 가 동성연애자 이며 그녀가 동성연애자들을 주정부 공직에 임명한다는 소문이 나도록 하였었다고 한다. 후일 Bush 를 따라 백악관으로 옮겨와서 악명높은 막후 모사들 노릇을 했었던 Karen Hughes, Karl Rove, Joe Allbaugh 등등이 선거참모 로써 이때에 일하였었다. Bush 는 54% 를 받아서 주지사에 당선되었었다.

Richards 로 부터 막대한 재정흑자를 인계받은 Bush 는 주지사에 취임하자마자 20억불에 달하는 Texas 주사상 최대의 감세를 하였다. 동시에 그는 Alcohol 과 마약의 남용에서 오는 폐해와 가정폭력에 대한 교육하는 기관들에게 정부예산을 주었었다.

Bush 의 비판자들은 그의 임기중에 Texas 가 환경보호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포함되었다고 지적하였는데 그의 지지자들은 선생들의 봉급이 인상되고 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상승하였다고 응수하였었다.

Bush 는 1999년에 전기회사들이 재활용 연료에서 발전되는 전력 일정량을 구입 하도록하는 입법을 하여 Texas 가 미국 전국에서 가장 많은 풍력발전을 하는 주가 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Bush 는 1998년의 선거에서 69% 를 득표하여 주지사에 재선되었었다. 주지사에 재선된후 그의 2000년도 대선출마설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Bush 는 John McCain, Orrin Hatch, Elizabeth Dole, Dan Quayle, Pat Buchanan, John Kasich 등 11명의 후보들과 경쟁한끝에 2000년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공천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타후보들보다 중도적이며 사려가 깊은 보수주의자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백악관에 정직과 명예가 회생되도록 하겠으며 미국의 군비를 강화하겠고 세금을 인하하고 교육을 개선하겠으며 소수민족들을 도웁도록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John McCain 과 막판경쟁을 벌렸던 Bush 는 일부 언론에 의하면 모략전략 까지 쓴끝에 대통령후보로 공천되었었다. Bush 41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Dick Cheney 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Bush 43 은 총투표수에서는 Al Gore 에게 졌으면서도 선거인단 표수로 승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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