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날
▶ 휘발유 도매가 1724원으로 인하
▶ 주유소 판매가, 아직 큰 변화 없어
▶ 1700원대 기대 소비자 발길 돌려
▶ “가격 인하 반영은 사나흘 걸릴 듯”
"기름값 떨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날인 13일 서울 불광동 한 주유소를 찾은 직장인 조성현(63)씨가 아쉬운 듯 쓴입을 다셨다. 휘발유 가격이 싸졌겠다 싶어 출근길에 급히 들렀는데 가격표엔 여전히 '리터(L)당 1,844원'이 적혀 있었다. '휘발유 공급 가격이 1,724원으로 내려갔으면 주유소 가격도 1,700원대로 당연히 떨어졌겠지'라던 예상이 어긋난 것. 조씨는 '만땅' 기대를 내려놓고, 2만 원어치만 찔끔 주유했다. 조씨는 "아직 가격이 비싸서 어쩔 수 없다"면서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가격이 오를 땐 로켓 같고, 떨어질 땐 깃털 같다'는 경제학 격언처럼, 이날 서울 도심의 주유소 기름값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정유사 직영 주유소 몇 곳을 제외하고는, 서울 전체 평균 가격은 여전히 1,887원(오후 6시 기준)으로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유소에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중구 한 주유소에서 만난 이진영(42)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1,867원이라 3분의 1 정도 남은 기름으로 며칠 더 버텨보고 다시 올까 한다"고 말했다.
주유소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무작정 가격을 낮출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석유 유통은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이어지는데, 정부가 시행하는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대리점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설정됐기 때문이다. 마진을 최소로 잡는다 해도 소매가는 당연히 도매가격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석유값이 폭등했을 때 비싼 값에 기름을 사 온 주유소들 한숨은 더욱 깊다. 휘발유를 1,929원에 판매 중인 서울 서대문구 주유소 운영자 박모(56)씨는 "원가 1,920원짜리 기름이 아직 탱크에 남아 있다"면서 "가격을 1,700원대로 낮추면 L당 200원씩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손해를 감수하는 곳도 몇몇 있었다. 서울 화곡동 한 주유소는 1,980원에 들여온 휘발유를 이날부터 1,938원에 팔고 있다고 했다. L당 52원 손해를 보더라도 비싸게 산 기름을 '박리다매'로 팔아 재고를 빨리 소진한 뒤 새 가격에 기름을 들여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유소 사장은 "원래 셀프 주유인데 직접 기름을 넣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손님을 많이 유치하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에선 다음 주 초는 돼야 전반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가 적용된 기름이 시중에 유통되면 사나흘 정도 시차를 두고 소매가격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톤 트럭 운송업자인 김영수(56)씨는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며 "우리 같은 운송업 종사자들은 기름값이 전부 비용이라, 하루라도 빨리 가격이 더 싸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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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나민서·남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