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임 교황 바오로 2세를 생각한다

2008-03-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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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사회과학원 강사)

1616년 봄, 종교재판소에 출두한 갈릴레오는 재판관 추기경으로부터 천체 운행에 관한 그의 이단적 학설을 포기할 것을 종용받았다. 과학논문으로 화형을 당하거나 옥사한 과학자들의 비운을 기억하는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학문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후에도 말과 글로써 가르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그는 석방되고 교황청 종교재판장 추기경의 엄숙한 말 한마디로 태양 주위를 돌고있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의 운행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교황이 합리적 기초가 필요 없는 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없듯이 그도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버릴 수 없었다. 그의 연구는 계속되어 혜성에 관한 또 한권의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재소환장을 받게 되었다.이번에는 상습범으로 기소된 재범자여서 형벌은 화형이었다. 출두하지 않으면 체포해 압송할 것이라는 추기경의 위협에 굴복해 교황청 재판장 앞에 서있는 그는 자신을 변론할 기력조차 없는 70세의 병든 몸이었다.
6개월 이상 진행된 재판은 그에게 강제로 ‘지동설’을 영구히 포기할 것을 선언케 했다. ‘성스런 성경에 두 손 얹고 맹세한다. 이단적 사고를 배척하고 나의 잘못된 연구가 허황된 야심과 무지의 결과임을 자인한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지 않는다는 것을 공표한다’ 그를 부축해 재판정을 나서는 귀 밝은 몇몇 사람은 중얼대는 그의 몇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지구는 돌고 있는데…”
‘하느님 밑에 그러나 황제 위에’ 자리매김한 교황의 대리인 재판장 추기경은 선고했다. “우리 주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스런 이름으로 갈릴레오의 모든 저서가 금서임을 포고하고 형기가 종결될 때까지 복역하라”
1633년 로마의 초여름은 이렇게 무덥고 어두웠다.영달을 꿈꾸는 주위의 어용학자들의 배신에 더욱 슬픔을 느끼면서 감옥에서 또 한번의 저서를
몰래 냈으나 시력을 잃어 자신의 출판저서를 볼 수는 없었고 가슴에 안은채 한많은 78세의 인생을 마쳤다. 장례식은 물론 묘에 비석조차 세울 수 없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려는 후세 과학도를 위해 산교자가 된 것이다.

교황청이 갈릴레오를 이단으로 몰아 종교재판 판결로 옥사시킨지 400년만에 그의 조각상을 그가 재판받을 당시에 감금되었던 바티칸 정원 내에 세우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영국 일간지에 의해 알려졌다. 과학적 설명이 없는 허상을 만들어 그것에 대한 의혹 제기도 허용치 않는 교회의 비 관용은 인류의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의 발전을 몇 세기 지체시켰다. 그런 과오를 범하고도 교황은 오류를 인정치 않았다.

전임 교황 바오로 2세의 권고가 발단이 된 교황청의 발표는 갈릴레오의 명예회복과 인류에게 과학이 있는 종교, 그리고 종교가 있는 과학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넓은 도량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공산 폴란드 인민이 배고파 도둑질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렇게 공산당에 항거한 추기경으로써의 용기는 공산당원들이 두려움을 갖게 했고 교황이 되어서는 그의 조국이 자유를 찾도록 길을 깔아주었다. 예수가 자신만이 아닌 이웃의 세계를 보게 해 주었듯이 그는 같은 시대에 사는 비 교인들에게도 평안을 느끼게 한 진보적인 교황이었다.

분단으로 고통받는 한반도에 종교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많아 교회나 사찰을 곳곳에 세우는 것은 신의 축복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동상을 북녘에 세우려거나 그들의 정치집회 한 가운데 서서 불합리를 성토하는 용기있는 목회자나 승려를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종교 대표자들의 1%만이라도 십자가를 맨다면 통일은 성큼 다가올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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