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끄러움과 용기

2008-03-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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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홈아트 갤러리)

82년도 겨울, 한국을 다녀오는 길에 하와이를 들러 오게 되었다. 한국과 뉴욕은 쌀쌀한 날씨였으나 와이키키 해변은 수영복 차림에 야자수 그늘 아래서 ‘지상에서 영원으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태평양 푸른 파도를 볼 수 있어서 나로서는 처음 이국적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거기서 아이리쉬계의 ‘바비’라는 친구를 소개 받았는데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났으며 70년대 일본 경제의 호황 덕택에 일본인을 상대로 기업을 하여 튼튼한 재력가가 된 사람이었다.하와이 민속촌, 고급 레스토랑 등등 아무튼 며칠동안 분수에 넘치는 VIP 대우를 그에게서 받았다. 떠나올 때 비행장까지 배웅나와 하와이 특유의 향기가 가득한 꽃으로 만든 긴 몰걸이를 나의 가슴에 안겨주며 아쉬운 작별 속에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그런데 잊을만한 세월이 흐른 후 ‘바비’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하와이에서 받았던 호의를 생각한다면 열 번이라도 나가야 했다.나는 제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나갔다. 그는 건강한 모습에 신사다운 품위가 그 때보다 더 좋았다. 여유있는 웃음으로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서부쪽은 사업상 자주 가는 편이지만 뉴욕은 난생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으로 가는 도중 뉴욕에서 하루만 쉬었다 가기로 했다나... 그리고는 농담조로 뉴욕에서 가장 멋진 자동차 캐딜락도 한번 타볼겸 내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내가 캐딜락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얼마 전 한국을 갔었는데 거기서 나의 소식을 알았다는 것이다.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더니... 태평양을 건너 서울까지, 그것도 모자라 다시 하와이까지 소문이 퍼졌단 말인가.당시로선 그렇게 힘들었던 미국 비자를 받아놓고 나는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었다. 서울서 뉴욕까지 외상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뉴욕 도착 후 3년 동안 그 외상 비행기표를 다 갚은 뒤 꿈에 그리던 자가용을 마련했다. 한국에서는 고관들도 타기 힘든 8기통 중고 캐딜락을 600달러에 구입했다. 차고가 없으니 재산목록 1호인 그것을 길가에 세워둘 수 밖에.

하루는 트럭이 받았는지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정비소를 찾으니 수리비가 800달러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더니 차값이 600달러인데 차값 보다 수리비가 비싸단 말인가. 나는 혼자서 투덜대며 철사줄로 빙글빙글 동여매었다. 어떤 날은 뒤 깜빡이를 누군가 깨버렸다. 그것도 고치려면 200달러, 고급 차는 부속 값도 비싸다나. 빨간 비닐로 가리고 그 위에 테입을 붙였다. 옆 유리창을 깨고 도둑이 들었다. 잃어버린 것은 없는데 유리값이 문제였다. 비닐로 막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차 밑 머플러까지 구멍이 나 소리가 탱크 소리처럼 요란했다. 찢기고 우그러지고 정말 가관이었다. 이 유명한 8기통 캐딜락을 한국에서 온 고급 손님들은 탈 수 밖에. ‘바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하탄 5번가를 지날 때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다. 기분이 어떠냐고 ‘바비’에게 물었다. 그는 마치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샬이 된 기분이라며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센트럴 팍 앞, 그 유명한 호텔 앞에 정지했을 때 큰 모자를 쓴 호텔 직원이 정중하게 모셨다. 우리는 예약된 방에 짐을 풀고 매번 한국손님들에게 가이드 한 것처럼 브로드웨이를 타고 아래로 다운타운 쌍둥이 빌딩을 거쳐 차이나타운에서 식사한 다음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면서 나는 앵무새처럼 말했다. “유명한 이 다리는 백년이나 된 다리로서...”

‘바비’는 언제나 반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너의 나라 갔더니 남대문은 600년이 넘었고 고궁을 찾았더니 건물 하나가 모두 400년, 500년, 경주에는 돌멩이 하나가 천년이 넘은 것들인데 겨우 100년 된 다리 하나가 자랑할게 뭐가 있느냐고 하는 것이었다.앗차,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똥차를 몰고 그 앞에 당당히 나타났던 용기는 어디로 가고 무심코 내뱉은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수치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불타는 숭례문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바비’가 한 말이 생각났다. 조상님들이 물려준 건물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높은 빌딩 올렸다고 자랑하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 모두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외국인 보기에 정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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