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글픈 우리 음주문화

2008-03-08 (토)
크게 작게
박중돈(법정통역)

한인들이 술이 원인이 되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일으켜 중범 형사범죄인으로 체포되어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최근에만도 큰 사건으로 플러싱의 공영주차장에서 일어난 강간사건이나 베이사이드에서 한 유
학생이 저질렀다는 가택 침입 절도사건 등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입건되어 법원에 송치되었을 때에 담당 변호인과 상담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 사람들이 술이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원에서 보면 당연히 술에 관련된 사건이 부지기수이고 이는 어느 특정 인종이 아닌 일반적으로 모든 인종에게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사건이지만 술이 도가 지나쳐 만취되었기 때문에 사건의 경위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끝에 사건이 일어난 경우는 유독 한국인들만의 특
성같아 보인다. 음주운전 사건은 이제 한인사회에서 일상사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한국인들의 술에 대한 특이한 인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아 보인다.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점은 한국인들의 일반적 음주습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를 마시는데 다도(茶道)가 있듯이 우리의 전통에는 술을 마시는데에도 주도(酒道)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옛말에 술은 어른 앞
에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마셔야 하고, 술을 마시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를 엄격히 배우면서 마셨는데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우리의 전통 주도는 간 곳이 없고 작금의 한국인들이 술을 마시는 습성은 마치 타락한 약물 중독자들이 약물에 취해 넋을 잃고 헤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술이라는 약물에 정신을 잃어버리려고 폭음하는 것이 작금의 음주문화가 되어 있다.

한국인들의 음주 습관은 마시는 과정에서 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될수록 빨리 술이 취해 정신이 나가기를 기다리는 스타일로 술을 마신다. 그러니까 폭탄주 스타일로 술을 마시는 것은 가난한 술꾼이 적은 돈으로 빨리 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술 스타일로 미국에서도 가난뱅이들
이 모이는 주점에 가면 보일러 메이커라 부르며 양주에 맥주를 안주삼아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한인들은 이 정도의 가난뱅이는 아니지 않는가?

한 마디로 한국인의 주벽은 술을 마시면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그 끝이 없이 마시는 데에 문제가 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정신이 완전히 나가서 인사불성이 되어야 끝이 나는 술 습관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의 주벽일 듯 싶다.당(唐)나라의 시성 이백(李白)은 시를 읊으면서 술을 마셨다. 술이 이렇듯 멋을 즐길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시를 읊도록 무-드를 가져다 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우리 한국인들은 이 멋있고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이 값진 음식을 그 본래의 뜻을 거슬려 독약으로 둔갑하도록 자초하고 있다.

술이 취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술이 취했다는 것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인즉, 자기가 기억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비참한 일인가? 몇 해 전에는 플로리다주에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게한 운전자가 살인죄의 유죄판결을 받아 15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람도 술이 너무 취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다. 이는 오히려 자기가 기억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벌을 받는 것 이상으로 비참한 결과인 것이 아닌가?

한인들도 이제는 문명 선진국 대열에 낀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는 폭탄주를 마셔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시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주도(酒道)를 찾을 때가 되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