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03-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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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수필가/교육가)

우리 말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늘 되씹으며 깊이 생각하는 말이라고나 할까.이 말의 뜻을 더 잘 이해하기 우리 사전에서 두 단어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하여도’라는 뜻을 가진 ‘그리하여도’와 무엇에 얽매이어 꺼리지 아니하다는 뜻의 ‘불구(불구)하다’는 낱말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니 ‘설사 그렇게 한다하여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의 말로 무슨 일을 할 때 아무리 나쁘고 어려운 상황이 따르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기어히 그 일을 해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본부 벽에 붙어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시가 생각난다.<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 뒤가 맞지 않고/자기 중심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당신이 친절을 베풀면/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등등의 아름다운 시들.


또 칼 힐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The Prophet) 첫번째 제목의 글 ‘사랑에 대하여’에서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싸 안을 때 전신을 허락하라/비록 사랑의 날개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을 상처받게 할 지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얼마나 감미롭고 의미심장한 글귀인가.
또 있다. 한 조각가가 작업 중에 그의 오른손을 잃고 말할 수 없이 힘든 가운데 왼손으로 작품을 완성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멕시코시티에 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의 그 유명한 조각상.

어찌 이 뿐이랴. 성경 속에도 얼마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그 밑바닥 도처에 잠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자식 이삭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할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자식을 데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던 일 등 이러한 사례들이 어디 하나 둘이랴.이 모든 일들이 한결같이 참담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할 때 기독교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이루어 놓은 역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도 얼마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승리한 사람들이 많은지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나는 최근에 참으로 몹시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어 테러에 가까운 메일 한통을 받았다. 아마도 같은 뜻을 가지고, 한 배를 탄 동지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메일을 받고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나의 무능함과 부덕함에 대하여 반성하면서 간절히 회개하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 도리어 복을 빌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이것이 요즈음 외우고 있는 나의 암송 성구였다.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생활을 잘 영위하기 위해서, 아니 우리의 인격 완성을 위해서, 가정 직장 학교 교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감수해야 할 지… 아무래도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나의 또 다른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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