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멕시코 출신 이민자 앵커맨의 목소리

2008-02-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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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오바마-클린턴 텍사스 경선을 앞두고 지난 2월 21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CNN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은 쟁쟁한 CNN 언론인 뉴스캐스터와 미국 최대 스페인어 방송국인 유니비전의 Jorge Ramos로 구성된 세 사람으로 진행되었다.앵커맨 라모스는 백인계 푸른 눈의 멕시코 출신 이민자이다. 토론회는 라모스 앵커맨의 강한 엑센트의 첫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클린턴 상원의원님, 반세기 동안 집권했던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난 후 미국 해안에서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새로운 기회가 올 지 모릅니다. 쿠바의 새 지도자 라울 카스트로를 한번쯤 만날 의향이 있습니까?”클린턴 의원은 새 지도자가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오바마 의원은 아무 전제조건 없이 쿠바의 새 지도자를 만나겠다고 대답했다. 쿠바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과 가족 방문 등의 정책을 완화시키겠다고 하였다. 미 대선의 집권지로 꼽히는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쿠바인 이민자들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밭을 의식한 질문이다.


히스패닉 이민 가정의 97%가 시청하는 유니비전 앵커맨인 라모스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는 TV, 방송, 컬럼을 통해 라틴 문화가 멜팅팟에 녹아 동화되기 보다는 중남미 라틴국가의 불꽃같이 강렬한 색채의 전통과 언어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한다. 또한 라틴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미국의 문화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히스패닉)온종일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햄버거나 피자를 먹지 않는다. 또한 스페인어 TV 프로그램이 아니면 시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게 오는 이-메일은 핼로 대신에 ‘alo’라고 인사를 한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에게 잃은 땅-캘리포니아, 텍사스, 애리조나-은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우세한 지역이 많고 베이글(Bagel)보다는 토르띠야(tortillas)가 케첩(ketchup) 보다는 핫소스(hot sauce)가 더 많이 팔린다”그의 목소리가 닿는 곳은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밑바닥 지하경제층으로부터 고소득의 상류층까지 두껍고 폭 넓은 층을 이루고 있다.

에미(Emmy Award) 수상자인 그는 ‘죽음의 횡단’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나드는 멕시코 밀입국자들의 접경지대의 처절한 삶을 그린 책이다.그는 가마솥 같이 끓는 사막을 뚫고 또는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다가 죽어가는 멕시코 밀입국자들은 21세기 최악의 비인도적인 비극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또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극한적인 삶을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으로 그리고 있다.
히스패닉 인구는 400만명 이상을 돌파하고 있으며 더 이상 소수민족도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히스패닉 아이들의 인구는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들의 인구를 능가하고 있다. 10대부터 시작하여 아이를 많이 낳는 문화배경 때문이다.노인 인구가 늘어가는 백인 인구와는 반대로 히스패닉 인구는 생산적인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정치력의 신장으로 거대한 미 대륙을 잠식해 들어가는 신생국가 에스파냐 왕국이 세워지지 않을까?냉전시대의 최전선이었던 쿠바는 카리브해에 떠있는 고립된 섬이다.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분단된 북한도 반세기 이상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또한 미주한인 동포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없는 공백 시대를 살고 있다.

대통령 대선 후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 앵커맨의 목소리는 창끝으로 찌르듯이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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