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사들이 본 조선인상

2008-02-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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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기미년 만세운동이 터진 직후 조선총독부는 선교사 대표 9명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1919년 3월 22일). 와다나베 조선 최고 재판소장, 고꾸부 법무국장 등 총독부의 고위층이 나오고 선교사 대표로는 상해 출장 중이던 감리교의 웰치 감독과 장로교의 마펫, 게일, 노블 선교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 선교사들은 20년 이상 조선에 살았고 특히 마펫과 게일은 30년 이상 살고 있었다. 마펫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조선인에게 있어서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의(義)입니다. 그들은 굶어도 사람답게 대접받는 것과 어른 대접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선교사들이 본 조선인상은 굶어도 떳떳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귀중하기 때문에 잘 살게 해 줄테니 내 말을 잘 따르라는 통치 방법은 또 다른 만세운동을 부를 거라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우리 조상들은 가난해도 바른 길을 걷는 것을 귀중히 여겼으며 불의 앞에 행동할 줄 아는 의(義)를 지니고 있었다. 구경꾼이나 앉아서 걱정만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기미년 만세운동 같은 거족적
인 봉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세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로 이어지는 독립선언문은 힘의 통치를 부정하고 도의, 곧 진실과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새로운 시
대를 소망하고 있다. 그 후 89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 과연 두 동강이가 난 우리 조국에 정의와 진실과 평화가 자리 잡고 있는가? 해방이 된 지도 60여년이 지났으니 삼일절을 맞았다고 해서 일본의 침략 역사를 되씹어 규탄하는 것도 김빠진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기미년 만세운동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미년에 우리 조상들이 만세를 외친 것은 실로 자유를 향한 함성이었다. 어린 여학생들이 십자가에 알몸으로 묶여 인두와 칼로 고문당하면서도 목청을 높여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고 한다.(박은식의 ‘한국독립사’) 거의 모든 자유를 빼앗겼던 그들이 거리에 뛰어나가 목이 터지게 만세를 외친 것은 우선은 독립을 위한 절규였지만 그 의미는 자유를 향한 함성이었던 것이다.

이민의 목적에 대한 동포들의 말을 들으면 ‘기회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난다. 보다 나은 교육의 기회, 취업의 기회, 풍요한 삶의 기회 등을 말한다. 당연하고 솔직한 현실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더 높여 ‘이 땅에 이미 확립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전세계에서 모여 온 이민들과 함께 보다 더 완전한 자유를 수립하기 위하여 땀 흘리려 왔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자유라는 말은 미국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도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헌법도 자유의 외침이며 국가도 자유의 노래이다. 미국인의 자랑이 자유이고 그들의 긍지와 삶의 의미도 자유를 지키는 것이며 역사 전체가 자유의 투쟁사이다.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의회에서 연설한(1775)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절규는 독립전쟁의 씨앗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미국의 정신으로 남아있다.미국 역대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자유가 언급되지 않은 연설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시에 자유를 주셨다”라는 말은 제퍼슨 대통령(제 3대)의 기본적 이념이었고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이라크 침략도 자유를 위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 역사가들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은 자유 수호라는 데에 명분이 있었다.한국인은 남과 북이 모두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독재자들 밑에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되어 “누군가 강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잘못된 신화를 머리속에 갖게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되는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기미년 만세운동 때는 ‘나와 모두’를 귀중하게 여기는 ‘천민(天民)사상’이 있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강한 자를 사모하는 한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자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함께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가능해진다. 남을 의지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마음이 있다면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무엇을 빨리 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천천히 해도 되도록 많은 사람이 만족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 배우는 것이 발전이다. 시간이 걸려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참가를 기다리고 선택의 기회를 주고 그런 과정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나에게 맡겨달라”는 말은 책임감이나 자신감이 있어 보이나 “함께 해보자”는 말이 민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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