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의 변태상 이모 저모

2008-0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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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작년 10월,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 없는 가벼운 여행길에 오른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젊어서 지냈던 추억의 곳곳들만을 둘러볼 셈이었었다. 전에는 그렇게 커보였던 서울이웬지 그렇게 아담해 보였고, 전에는 크고 넓었던 퇴계로는 마치 골목길 같이 좁기만 했다.

서울의 10월은 특별한 일 없는 때라서 평범하기만 했고, 그저 가을이 접어든 조용한 때인 것 같았다. 명동거리는 무척이나 추억이 많았던 길이기에 몇 번이고 유심히 다녀보았다. 저녁시간은 고사하고 오전이고 아니면 오후이건 간에 명동거리는 어느 때고 길이 꽉 찰 정도로 행인이 많은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아니면 대부분이 20대, 30대의 젊은층이다. 그 시간에,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듯한 연령층들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5번가나 소호의 거리도 이 대낮에는 이런 많은 사람들이 들끓지는 않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청년층의 실업률이나 무직율이 높아서일까? 한국에는 노년층의 인구가 급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누누히 들은 기억이 나는데 나이든 사람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참 이상하게 여겨졌다.L백화점은 아침 10시반에 문을 여는 모양인데 많은 사람들이 미리 와서 셔터 문이 올라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블랙 후라이데이를 빼놓고,맨하탄의 헤럴드 스퀘어에 있는 메이시스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12월 말쯤에서야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튼 대단하다.

서울의 경기는 무척 좋은 모양이다. 경제가 나빠져서 이번에는 경제 대통령을 뽑았다는 요즈음들 떠드는 말들이 이해가 안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 두어 곳은 세계적인 명품만을 취급하는 따로의 고층빌딩들이 있는데 그 안은 뉴욕의 5번가의 명품점들을 총망라해 한 곳에 모아놓은 듯 하다. 여기도 붐비기는 매일반이다. 경제가 호경기임에는 틀림없는 듯 싶었다. 아마도 발전도상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특유의 모양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해 보았다.

대학시절, 지금의 부인이 된 애인과 데이트하러 자주 가곤 했던 모 여대를 찾았다. 대학 캠퍼스도 물론 많이 변하고 커졌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학교 입구를 중심으로 적어도 반마일 반경으로 사방으로 자리잡고 있는 먹거리, 입을거리 집들의 엄청난 규모의 상가였다.식당, 카페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도시의 번화가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 싶었고 수없는
양장점, 부티크, 악세사리점들은 아마도 강남이나 명동을 훨씬 능가하는 질과 스타일, 또 동대문시장의 첨단 유행에 못지 않는 듯 싶었다. 그 수 백개의 상점들이 모두 이곳 한 대학의 여학생들을 상대로 막대한 상권을 이루고 있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그만큼 돈을 많이 쓴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들의 부모들은 모두가 호황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일까?
미국의 유명한,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 앞이나 주변, 또 몇 유명한 여자대학교 주변도 이럴까?

그건 아니다. 이것도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정상 아닌 변태 현상 중의 하나인 듯 싶다.백화점 문 닫기 전, 두어시간 동안의 ‘후드-코트’는 발 들여놓을 틈이 없어 서서 자리 나기만 기다린다. 퇴근길에 아예 외식하고 집에 가자는 것이다. 맨하탄에서 퇴근시간만 되면 한시라도 바삐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히려 퇴근길의 식당들은 보기가 딱할 정도로 대부분 무척 한가하기만 하다.

서울에서의 이 여러가지 변태상의 이것 저것들이 과연 말대로 돈도 없고, 살기 힘들 정도로 경제가 엉망인데도 가능할까 하는 의아심도 생긴다. 아니면 이렇게들 살고, 또 이렇기 때문에 경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세계 십 몇번째 경제대국을 부르짖으면서도 나라 경제나 국민 경제가 좋지 않고 국민들이 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큰 변화를 택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에서 경제, 경제 하고 나오자 현직 대통령은 오히려 ‘지금 경제가 어떻길래 이렇게들 경제를 가지고 야단이냐’고 하는 것을 보니 경제라는 것도 마치 프리즘을 통해서 빛을 볼 때에 어느 쪽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색깔이 달리 보이는 것 같은, 희한한 현상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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