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은 교활한가?

2008-0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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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언론인)

미국인의 눈에 비친 동양인의 이미지를 한 마디로 요약한 표현이 있다. “중국인은 더럽고,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한국인은 sly하다”
내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당시 화교들의 모습이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검정 솜옷 한 벌로 겨울을 나는 동안 세탁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되놈’이라는 호칭의 배후에는 지저분하고 돈 밖에 모르는 인종이라는 폄훼(貶毁)의 정서가 담겨 있었으니까.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많아 나라를 통치하고 온 백성을 배불리 먹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수 십년 동안 공산주의 하느라 궁상에 절었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 인상을 오늘까지 불식시키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등소평 같은 지도자를 만나 고도의 성장을 누리면서 국력은 무섭게 늘어나고 있지만, 개개인의 삶은 아직 말이 아닐 터이다.미국사람들이 일본인을 동양 최고의 문명인으로 보는 건 당연하다. 옛날이야 어떠했던 근대화의 선두주자로 한때 동양을 석권했고, 미국과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치룬 나라가 아닌가. ‘국화와 칼’로 대표되는 국민성은 강자 앞에서 상냥하고 예절 밝기로 따라갈 인종이 없다. 거기다 국민소득이 높고 교육수준도 높으니 깨끗하고 매너가 좋을 수 밖에.


문제는 한국인에 대한 평가다. 한국인을 그들 어휘로 ‘sly’하다고 한다는데 도대체 이 단어의 함의가 무엇인가? 이 낱말은 머리가 좋긴 하지만 그 좋은 머리를 좋은 방향으로 쓰지 않고 나쁜 곳으로 굴리는 것을 의미한다. 직역을 하자면 교활하다거나 음흉하다는 표현이 된다. 이기적이고 약아빠지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이중인격자를 말함이요, 이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마음은 진실성을 상실한 상태고, 입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대목이다. 우리로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그러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가 세상에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든 황우석 교수의 가짜 논문과, 신정아의 가짜 박사학위와 교수임명 사건은 한국인의 부도덕과 정직성
의 결핍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마따나 하느님은 한국인에게 좋은 머리를 주셨다.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은 데 쓰지 않고 나쁜 데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외국에 가서 한국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 가운데 하나가 사기(詐欺)에 걸려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기꾼의 대부분이 같은 한국인이라고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미국에선 영주권을 둘러싼 이민 브로커들이 극성이고, 태국에서 보니 부동산 거래를 놓고 사기꾼 공방이 시끄러웠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한국인을 피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 가운데 ‘착하다’는 말은 ‘바보’라는 뜻으로 통한다고 한다. 이 땅에서 바르고 착하게, 거짓을 부끄러워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진정 어려운 일인가. 법규를 지키며 공익을 위해 손해보는 것이 그토록 억울하고 밑지는 삶이란 말인가.

우리 조상은 원래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마을 울타리 안에서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았다.
남을 속이고 혼자 잇속만 챙기는 못된 인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일제
식민치하의 모진 학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변칙(變則)을 구사하는 가운데, 원래의 DNA를 일
탈한 변종이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급하게 몰아치는 물질 만능의 세태를 살아가는 방편으로 변화를 거듭한 인간 게놈의 염
색서열이 못된 변종을 양산하기에 이른 것이 아닐까.
길지도 않은 한 생애를 살면서 어찌 사악한 변종으로 살려 하는가. 교활하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가서 지난 세월을 놓고 손익 결산을 따져보면 누
구나 양심에 따라 바르고 정직하게 산 것이 결코 바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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