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켜준다는 것은 약속이어라

2008-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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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약속에는 하늘의 약속이 있고 사람의 약속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햇수를 따라 커간다는 것과 나이 들어 노사(老死)한다는 것은 하늘의 약속이고 그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진다.인간의 약속은 나약하고 어느 때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아름답지 못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약속은 때에 따라 변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약속은 힘이 들거나 손해를 보더
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은 이것 저것 찾아다니지 않고 그냥 흘러가지만 삶은 많은 것을 악착스럽게 찾아다닌다. 자초하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는 삶, 거기에는 항상 노동과 고뇌가 동반한다. 힘들지 않으면 삶이 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무언과 유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고 노동이다. 지켜지기 힘든 약속, 그러기에 지켜지는 약속을 보고 아름답다고도 하고 믿음이 있다고도 한다. 어느 사람은 사랑을 약속하고 어느 사람은 정의를 약속한다. 법관은 정의로운 법의 실천을 약속하고 정치가는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안전을 약속한다. 종교는 내세를 약속하고 사람은 사랑 가운데에서 상대의 배려를 약속한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인간의 활동과 더불어 동반하는 그 수많은 약속들, 그러나 지켜진 약속은 과연 몇이나 될까?


기독교에 있어서의 구약은 십계명이란 계명을 내놓고 지켜야 된다는 약속으로 인간에게 요구하고, 신약은 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약속을 요구한다. 불교에서는 고해에 무릎을 꿇지 말고 어떠한 방법이든 득도해서 이겨낼 수 있는 의지의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약속하고 쉽게 약속을 어긴다. 약속에는 성문의 약속이 있고 불문의 약속이 있다. 현세에서 성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그에 따르는 벌이 있어 대체로 잘 지켜지지만 불문의 약속에는 벌을 피해갈 수 있어서인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성문의 법은 사회적이고 불문의 법은 인간적이다. 불문의 약속은 성문의 약속보다도 사회성이 아니라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불문의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 때에 약속을 지킨 사람의 얼굴에서 수정같이 맑은 완성의 빛을 본다.

사랑의 약속은 인간적이다. 사랑을 약속하고 얼마 지나면 약속이 어겨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순애보와 같은 사랑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요즘 세상에도 마음을 깎으며 정성을 쏟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혼이 많아지는 요즘 세상에도 인연을 붙들고 인내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믿음의 약속이 첫째이고, 사랑의 관계에서는 희생의 약속이 첫째요, 종교의 관계에서는 봉사의 약속이 첫째다.
이기심이 앞선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는 희생정신이 생기지 않고 희생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믿음과 사랑과 봉사가 생겨나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간절히 생각하게 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다. 나를 찾아다니지 않고 상대를 찾아다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다. 외롭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상대가 하는 것을 묵묵히 따라가는 사람은 사랑이 있다.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해서 관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사랑이 있고,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약속은 스스로 한 것이고 스스로 약속한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한 하늘을 바라보아도 부끄러움은 없다. 약속을 굳게 믿는 땅, 배를 다 까내놓고 저 할일 다 하며 누워있어도 부끄러울 게 없다 한다. 기분 좋게도 우리는 그런 곳에서 살고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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