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구무언 ‘남대문 소실’

2008-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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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국(광고기획사 대표)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2008년 2월 9일, 세상이 경천동지하고 모든 국민들이 놀라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커다란 굉음을 내며 정지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 한 축이 무너져 내렸다.610년 유구한 역사의 현장이 너무도 허술하게 맥없이 온 국민들의 가슴을 후려때리며 허망하게 그 자취를 감추며 명멸하고 말았다. 600여년의 모질고 험하였던 민족과 함께 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민족의 자존심으로, 조상의 얼로서 모진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대한민국의 심장부, 서울의 관문이었던 남대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다니, 우리는 이제 무슨 말로, 무슨 체면으로 조상들께 그 변명을 아뢰어야 한단 말인가.

후손들의 막중한 책임이 숭례문의 현판처럼 추풍낙엽의 꼴이 되어버리고 만 지금, 유구무언일 뿐 할 말이 없다.숭례문(남대문)은 이씨조선을 창업한 이성계가 도읍을 서울로 옮긴 7년째 되던 해, 풍수지리에 맞추어 관악산을 마주보며 이씨조선의 건국이념과 백성의 안위와 모든 질병을 막아낸다는 신념으로 건축을 하여 지금까지 서울의 관문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서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서울역을 기점으로 언제나 이 숭례문을 바라보며 서울에 온 실감을 느끼곤 하였다. 이제 우리 모두는 민족 전체의 기억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이 엄연한 이 사실 앞에서 소리없는 통곡으로 가슴을 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며 산다. 이제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짚고 가야할 몇 가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현 대한민국 정부 내에는 문화재청이라는 문화유산을 관리 감독하는 책임있는 관서가 분명히 존재한다. 과연 그들은 국보 1호가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방화되어 소실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 분명히 하여야 하며, 그 책임에 대한 분명한 소재를 밝히고 직무를 유기한 자는 마땅히 문책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앞으로 남아있는 국보는 물론 동대문(흥인문)과 같은 보물 1호를 비롯, 각종 천연기념물에 대한 관리 감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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