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숭례문의 참상을 보면서

2008-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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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박(뉴욕장로교회)

TV를 켰다. 숭례문(남대문)의 불타는 장면이었다. ‘숭례문’이라는 간판이 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국보 1호를 삼키고 있는 무서운 화마는 잠시 남대문을 완전히 붕괴시켰다.한국의 역사 600여년을 묵묵히 지켜 보았던 국보 1호는 허망하게 사라졌다.치욕의 한일합방의 비운의 시대에는 우리 동포와 같이 나라를 빼앗긴 것을 애통해 하였고 3월 1일 삼일절 독립운동 때는 나라를 찾으려고 일어선 한민족의 절규를 들으면서 통곡하였으리라.

8월 15일 광복절에는 우리와 함께 해방의 기쁨을 맛보면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고, 6.25 때는 공산군의 남침으로 잔혹한 전쟁이 조국의 땅을 마구 짓밟는 아픔을 견디었으리라. 4.19에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노도하는 젊은 학생들의 의거를 지켜보았고, 5.16 새벽에 어지러운 국가를 구하겠다는 군사혁명의 구둣발 소리를 들으면서 의연하게 사태를 주시했으리라.


우리 대한민국의 슬프고 어두운 역사들 속에서 망국의 원한, 독립투사들의 구국을 위한 피흘리는 운동, 해방의 기쁨, 곧이어 조국의 분단, 잔혹한 동족 살생의 전쟁, 학생운동, 그리고 군사혁명의 역동하는 역사들을 말없이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던 숭례문!너는 한국 610년 역사의 산 증인인 대한민국의 국보 1호였다. 그런 네가 화마로 인해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리는 이 어처구니 없는 참상을 보아야 하다니... 아, 슬프도다! 조국의 역사가 슬퍼서 너도 많이 슬펐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도 세계 몇 째가 되는 경제대국의 대열에 들어섰기에 앞으로는 더 밝은 날들이 많을 것이며 그래서 너도 더 많은 밝은 날들을 우리와 함께 또 우리의 후손과 함께 하고 또 지켜볼텐데... 슬프고 아쉽고 허망하구나.다시 한 번 불러본다. 국보 1호 숭례문이여!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서나마 영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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