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탐 랜토스를 기억하며

2008-02-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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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뉴욕 뉴저지 유권자센터 사무총장)

하원 외교위원회 탐 랜토스 위원장이 2월 11일 아침 암으로 운명했다. 그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하여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 그리고 외교위원회 위원장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80년 캘리포니아 제 12선거구 샌 마테오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14선 의원으로 미국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미국을 이끌어 왔다.

지난 2007년 미주 한인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하원 외교위원회에 상정하고 통과시킨 주역의 역할을 한 장본인이므로 탐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소감은 남다르다.2007년 5월 말로 기대되었던 H.Res.121(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상정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 6월 16일 LA에서 랜토스 의원장을 직접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백발의 80 노인이 조그마한 키의 부인과 함께 행사장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앞에 있던 한인 화동들을 쓰다듬고 귀엽다고 하면서 기념촬영을 일부러 부탁하였다.


이후 본인이 어떻게 인권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라는 한인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자신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라고 하면서 인권 문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본인이 직접 6월 26일 외교위원회에 121 결의안을 상정하여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외손자의 여자친구가 귀엽고 예쁜 한인 아가씨라고 하면서 한국인들이 유대인들처럼 고통받았던 지난 날을 이해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나라로 발전한 것에 경의를 보낸다고 하였다.

2시간 남짓, 지금은 고인이 된 랜토스 위원장과 함께 한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랜토스 위원장은 한국인들의 소원인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 이것이 한국인들에게 기쁨이고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자신이 꼭 평양을 방문해서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이 세계의 국가들과 함께 국제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방북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 날 그리고 6월 26일, 외교위원회에 121 결의안을 상정하여 회의를 진행하던 모습에서 느낀 것은 이 분이 대단히 신중하고 과묵하며 특히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제출한 분은 마이크 혼다 의원이었지만 혼다 의원은 하원 세출위원회 소속이고 가장 먼저 하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랜토스 위원장의 결심이 없었더라면 결의안 통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권자센터는 당시 모든 희망을 랜토스 위원장에게 걸고 전화 걸기와 편지 보내기, 심지어 사무실로 꽃까지 보내면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분의 결의에 찬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이 분의 결심과 노력으로 한을 품고 세상을 마감했거나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크나큰 위안을 드릴 수 있었다.고인이 된 랜토스 위원장께 다시 한번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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