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보 1호 남대문

2008-02-12 (화)
크게 작게
이철수(뉴욕 베데스더교회 합동목사)

한국의 현대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박완서 여사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이 분의 작품 가운데 ‘부끄러움을 가르치니이다’란 것이 있는데, 작품 첫 머리에 피난을 가면서 얼핏 돌아본 남대문의 웅장하고 신비스럽고 우아한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작품 속 여주인공의 삶이란 그야말로 밑바닥의 삶이었는데 초혼(初婚)에도 실패하고 돈을 좀 벌고 살려면 일본말을 배워야 한다는 동창생의 권고에 그녀는 광화문 근처의 어느 일본어 학원엘 다닌다. 그 근처는 전부 ‘○○학원’ 투성이였다. 점심 때가 되니 백여개도 넘는 학원에서 청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많은 인파 가운데 일본 관광객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한국인 안내원이 관광객들을 향해 친절한 안내방송(?)을 했다. “여러분! 이곳은 도둑이 들끓는 곳입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제 뉴스를 보니 바로 그 남대문이 불타 없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국보 제 1호의 그 웅장하고 우아했던 남대문은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 당당하고 기개가 넘쳐 흘렀던 ‘崇禮門’ 현판 글씨! 우리의 역사와 정신과 기개를 늠름히 상징해 주던 그 보물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다.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


소방차는 1분도 안되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스프링클러 장치를 해 놓지 않았단다. 어쨌든 소방차는 일찍 도착했다고 하는데 문화재관리국 측에서 국보 1호에의 접근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렸다. 소방대원들은 이 때문에 진화 시간을 끌 수 밖에 없었고 천신만고 끝에 불길이 잡힌 줄 알고 두 손 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불길은 그 안쪽에서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국보 1호는 불타 없어진 것이다. 부끄러움의 극치는 다음에 나온다. 문화재 관리 소홀과 소방서 측은 서로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이었다.국보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불을 끌 때와 예의를 지킬 때의 분간도 없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아직 새해 첫머리요, 새 대통령도 뽑은 경사스런 이 마당에 대한민국 국보 1호의 완전 소각은 이 나라 백성들에게 환골탈태(근본이 변하여 새로운 것이 됨)의 경고를 내림은 아닐까? 그러니 학교에선 부지런히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모두 부끄러움을 배우자. 그래야 살 수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