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명박의 섬기는 리더십

2008-01-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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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황석(전 뉴욕약사회 회장)

“여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는 ‘섬기는 리더십’을 주창하자 너도 나도 재청삼청이래요. 이경숙 정권인수위원장이 맞장구치자 언론매체도 덩달아 호응하여 전국민이 만세삼창인 모양이예요. 이명박 당선자와 동갑이라고 나이 자랑인 당신은 도대체 뭐예요?”
아내의 바가지에 나는 쇠북 두드리듯 대꾸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제야 섬기는 리더십을 언급했지만 나는 일찌기 50년 전 중학시절에 매일 ‘섬기는 리더십’을 입에 달고 다녔다구”
“아니, 그러면 당신도 중학교 때부터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을 팻말로 새겼다는 김영삼 대통령처럼 중학교 시절부터 대통령 꿈을 꾸어왔단 말이예요?”“그게 아니야” 나는 철모르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줘야 했다.50년 전 배재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첫 시간부터 교훈(校訓) 강의였다. 배재 교훈은 ‘욕위대자(欲爲大者) 당위인역(當爲人役)’(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이다. 전쟁통에 겨우 한글을 깨치고 올라온 신입생들이 ‘欲爲大者 當爲人役’이라는 어려운 한문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러자 선
생님은 성경 마태복음 20장을 펼치면서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배재 중고 6년을 다니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도 나는 제대로 뜻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작은 자로 살기만 했지 남을 섬기지를 못했던 것이다.이제 이 나이가 되어 조금 알 것 같지만…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당선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 말은 대통령이 되는 금언이었으니! 아까워라 아까워! 내 일찌기 배재 교훈만 제대로 알고 실천했어도 대통령급 인생이 되는건데. 만시지탄(晩時之歎)에 젖어있는 나를 아내가 달랬다.

“됐어요. 이제라도 섬기는 리더십을 깨달았으니 당신은 우리집 대통령으로서 훌륭해요”남편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아내의 눈치빠른 계산에 좀 당황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2900년 전 아버지 솔로몬에 이어 이스라엘의 4대 왕이 된 르호보암은 리더십으로 고민했다. 선왕 시절의 구신(舊臣)들이 아뢰었다. “폐하, 백성을 상전으로 섬기는 종의 리더십을 취하십시
오.. 그러면 백성들은 영영히 폐하의 종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측근으로 있는 젊은 그룹들은 달랐다.“폐하, 철권통치가 제일입니다. “나 르호보암의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솔로몬왕의 허리보다 굵다. 우리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으나 나는 전갈로 정치하리라’하소서. 그리하면 폐
하께서 용상에 앉아 새끼손가락만 까딱 까딱해도 국력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처럼 저절로 올라갈 것입니다”

야심만만한 르호보암 왕이 젊은 측근들의 말을 듣는 바람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북은 여로보암 왕이 이끄는 10족속의 이스라엘로 떨어져 나가버렸다. 르호보암왕에게는 겨우 2족속만이 붙어있는 소국(小國) 남 왕국 유다로 남게 됐다.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기간 중에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였지만 당선된 후에는 여야를 포함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당 보다는 국가와 국민이 잘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게 섬기는 리더십일 것이다.비록 2007년 사자성어로 ‘자기기인’이 선정되었지만 5년 후 퇴임 때 ‘當爲人役’이란 사자성어가 선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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